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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작가/설치작가 윤향수]주술로 「나」를 부른다

입력 1997-09-08 07:46업데이트 2009-09-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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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여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임신8개월의 여인이 인근 재개발 철거지구에서 골라온 무거운 기둥과 서까래를 집안 공터에서 닦고 말리고 깎는다. 기둥에 색칠을 하고 색실로 포장을 한다. 태어날 아기와 살아갈 날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염원을 담고서. 수십개의 나무기둥은 여러가지 실을 매달고 기원하던 옛 서낭당나무나 장승처럼 변했다. 이들이 한데 모여 작품을 이뤘다. 여류 설치작가 윤향숙씨(36)의 「기원의 방」. 불안한 시대의 초월의지, 희망과 염원을 가득 담은 윤씨 작품들은 절대존재를 통해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주술(呪術)의 반영이다. 주술을 통해 불러내는 절대존재는 특정 신(神)이라기보다 절실한 자신의 의지다. 윤씨의 작품은 그래서 「아직도 꿈속에서 옥죄는 어릴적 가난의 기억과 지금도 발목을 붙잡는 현실의 껍질을 깨고 자유를 향해 달려가려는」 기도문같은 것으로 평가된다. 평론가 장동광씨는 『주술적인 작품들로 삶과 인생의 의미를 반추시킨다』고 평했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호주 아프리카 원시미술이 주 관심대상. 89년 개인전 「이땅에서」, 91년 「명상의 방」, 94년 「기원의 방」 등에서 수백장의 부적을 벽에 붙이거나 장승같은 수십개의 기둥을 허공에 매단 작품들을 선보였다. 「기원의 방」 이후 3년이 흐른 97년 가을 강서구 염창동. 윤씨의 콘센트 건물 작업실은 고물상의 폐품 더미 사이에 돌출하듯 서있다. 찢어진 콜라 상표, 낡은 옷장식 구슬, 각종 폐품이 가득 쌓여 있는 방안에서 윤씨는 「현실을 밑구멍부터 바라보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다음달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는 그는 쓰레기들을 통해 「남루하고 비참한 현실일지라도 바로 그곳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의지의 표현을 담을 생각. 『누군가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99%를 실패한 삶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가난을 체념할 수는 있어도 삶을 체념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가난을 무릅쓰고 예술을 한다는 것은 삶의 한 모습일뿐 자랑이 아니죠』 〈이원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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