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재기자의 티비夜話] MBC ‘무한도전 in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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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5일 14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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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못한다고 관광가서 얌전해지지 말자"



광화문 네거리를 걷다 보면 수없이 많은 외국인과 마주치게 된다. 때로는 방향을 잃고 주변을 빙빙 맴도는 외국인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보는 사람이 답답해져 한번쯤 어깨를 툭 치고 "어딜 찾아요?"라고 묻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기도 한다.

그나마 가끔 길을 묻는 이들은 서구권 관광객들이 태반이다. 예의(?)바른 아시아 관광객들은 좀처럼 한국인을 붙잡고 질문하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손에 든 가이드북에 집중할 뿐이다.

생각해 보면 해외취재를 꽤 많이 다녀본 기자 역시 현지인에게 무언가 묻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영어권 국가일수록 그 정도는 심해졌지만, 이웃인 아시아 국가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어찌 보면 세계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이란 결국 세계공용어 지위에 오른 '영어'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 왜 우린 쓰기 힘들까?

무한도전 멤버들이 미국, 그것도 그 중심인 뉴욕을 향했다

그간 무한도전의 '정신적 지주'인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의 세계화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번에는 애당초 달력 화보 촬영용이란 명분으로 시작된 '복불복 게임'이 우연치 않게 팀 전원이 미국행을 택하며 판이 커져버렸다. 그러나 진짜 뉴욕으로 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예능프로그램이 뉴욕에서 이벤트를 벌인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뉴욕행이 결정되자 즉각 시청자들의 관심은 이들의 영어실력으로 옮아갔다. 이미 무한도전 '영어마을'편 등을 통해 멤버들의 '초등학생 수준'의 영어실력은 익히 알려졌다. 과연 이런 철없는 어른들이 뉴욕에 가서 뭘 보여줄 수 있을까?

바나나와 인사하는 개그맨 박명수. MBC 화면캡쳐
바나나와 인사하는 개그맨 박명수. MBC 화면캡쳐


이들은 미국진출을 준비한 적도 없고 정확히 대한민국 평균이라고 할 수 있는 학력과 나이(30대 후반)다. 게다가 대부분 10년 가까이 영어와 무관한 일에 전념했다. 여행사를 운영해본 노홍철을 제외하면 영어활용 능력은 누구라도 짐작할 정도 수준일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의 걱정만큼이나 무한도전 멤버들의 표정에도 기쁨과 우려가 교차했다.

실제 이들은 뉴욕 월스트리트에 도착해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뉴욕의 한식당에서 할리우드 스타들의 전용 젓가락을 보고 내비친 달뜬 모습은 마치 농촌 초등학생들이 처음 상경해 땅속 지하철을 보고 놀라는 모습만큼이나 촌스러웠다. 뉴욕이란 도시는 수없이 많은 시청자들이 관광객 혹은 비즈니스맨 자격으로 방문한 세계의 수도 아닌가?

때문에 극 초반 선보인 어리버리하고 때론 수치스러운 모습에 날선 비판이 제기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EBS 영어 강사이자 미국과 캐나다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가수 타블로의 친형 이선민 씨는 1편이 나간 직후 자신의 싸이월드에 다음과 같은 비난을 실어 논란을 부추겼다.

"완전 낯 뜨거워 미치는 줄 알았다. 한국 최고의 MC지만 뉴욕에선 그냥 우스꽝스럽고 어설퍼 보이는 동양인일 뿐인데 왜 하필 뻔한 '영어 한마디 못하는 동양인' 컨셉이었는지, 왜 하필 세계의 중심 뉴욕에 가서 또라이짓 하는 건지 모르겠다."

뉴욕을 찾은 MBC 무한도전 멤버들은 온갖 바디랭귀지를 이용해 소통을 한다. MBC 화면캡쳐
뉴욕을 찾은 MBC 무한도전 멤버들은 온갖 바디랭귀지를 이용해 소통을 한다. MBC 화면캡쳐


너무 얌전한 관광객, "스킨십이 있어야 상호이해가 깊어진다"

미국에서 동양인으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해한다면 이선민 씨의 불만이 과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세상살이란 원래 텃세가 배려를 압도하는 사회 아닌가.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는 이들로서는 '한국 최고의 방송인'이라는 작자들이 뉴욕에 놀러와 어법에 없는 영어로 백인들에게 무안을 당하는 모습에 어찌 열불이 나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미국 '주류사회'에 진입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관점이지, 관광객의 사정일 수는 없다.

1편 '세상의 중심에서 한식을 외치다'(11월 28일 방송분)에 이어 2편 '악마는 구리다를 입는다'(12월 5일 방송분)과 3편 '뉴욕클럽(12월 12일 방송분)' 편을 시청한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씩 달라졌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콩글리시를 현지인들이 긍정적이고 유쾌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 이들이 원활하고 실질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주어진 미션을 무난하게 수행하는 모습에는 짜릿한 쾌감까지 맛봤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관광객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는 현지인들과의 교류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인다는 점이 아닐까? 외국에 나가선 거의 대부분이 예의바른 사람으로 돌변한다. 가난한 나라를 방문하게 되면 안전상의 이유로, 부자 나라에서는 주눅이 들어 현지인들을 접촉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한도전 멤버들은 교과서에서만 배운 영어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했음을 입증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여행의 즐거움이 훨씬 커질 수 있음도 보여줬다.

"An-yung-ha-se-yo!(안녕하세요!)"

한국인사 '안녕하세요'가 이제는 널리 알려진 인사말이 됐다는 걸 알려준 것도 무한도전 뉴욕편의 흥미로운 성과다. 전 세계 인사말 가운데 '안녕하세요' 만큼이나 발음이 어려운 인삿말은 흔치 않다. 그러나 뉴요커들은 마치 교양이라도 되듯이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안녕하세요'를 연발했다.



비싼 돈 주고 외국 갔는데 뭐가 부끄러울까?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무한도전 멤버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과연 임무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들이 그 부자연스러운 영어를 용기를 내 끄집어낼 수 있었을까?

2편에서 주어진 'ESB(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찾아가 층수를 알아오라'는 미션에 멤버들은 '어쩔 수 없이' 행인을 붙잡고 'ESB'가 무엇인지부터 물어야 했고, 직접 층수를 세다가는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경비원을 붙잡고 ESB가 몇 층인지 물어봐야 했다.

그 과정에서 무안도 당했지만 친절한 배려도 느꼈다. 아무리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라도 듣는 이의 배려만 있다면 불가능한 의사소통은 없었다. 그 점이 무한도전 뉴욕편의 성과이자 시청자들이 감동을 느낀 대목이다. 스킨십이 여행의 재미와 이해를 높힐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인들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인도 영어도 한국 사람이 들어보면 황당하기 그지없고, 중국 성조가 들어간 싱가포르 영어도 황당 그 자체지만 커뮤니케이션에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던가.

여행의 만고의 진리란 '모르면 물어야 한다'는 것. 비싼 돈을 내고 간 여행이란 단순히 효율적으로 목표한 관광지를 둘러보고 오기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할로윈 데이를 맞이한 멤버들은 각종 코스프레로 치장하고 뉴욕 거리를 활보한다. MBC 화면캡쳐
현지에서 할로윈 데이를 맞이한 멤버들은 각종 코스프레로 치장하고 뉴욕 거리를 활보한다. MBC 화면캡쳐


#결정적 장면

12월 5일(토) 방송분.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싱크카페(Think Cafe)'에 찾아가 패션잡지 '미란다' 편집장이 즐겨 마시는 커피를 주문해 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멤버들은 최소한의 힌트를 접하고 뉴욕대(NYU)로 향한다. 그런데 뉴욕 지도에 그 카페의 위치가 나와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멤버들은 용기를 내어 NYU학생들에게 '싱크 카페'의 위치를 묻고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그 집 위치를 찾아준다. 그 과정에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나누고 한국에서 온 철(?)없는 관광객들과 대화를 나눈다.

12월 12일(토) 방영분. 10월31일 현지에서 할로윈 데이를 맞이한 멤버들은 각종 코스프레로 치장하고 뉴욕 거리를 활보한다. 이들의 예상과 달리 할로윈 데이를 즐기는 뉴욕 시민은 몇 되지 않았다. 결국 뉴욕 시민들이 무한도전 멤버들의 특이한 할로윈 코스프레를 감상하는 역조 현상이 벌어진다. 주객(主客)이 뒤바뀐 흥미로운 광경이었고 무한도전의 정신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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