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태풍’의 두 카리스마 장동건-이정재

  • 입력 2005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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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제작비 150억 원에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연출한 올해 최대 화제작 ‘태풍’의 두 주연 장동건(왼쪽)과 이정재. ‘현대판 해적’(장동건)과 그의 뒤를 쫓는 해군 장교(이정재)로 나오는 이들은 처음에 적으로 만났으나 차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강병기 기자
순 제작비 150억 원에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연출한 올해 최대 화제작 ‘태풍’의 두 주연 장동건(왼쪽)과 이정재. ‘현대판 해적’(장동건)과 그의 뒤를 쫓는 해군 장교(이정재)로 나오는 이들은 처음에 적으로 만났으나 차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강병기 기자
그들은 이제 막 영화 속에서 빠져나온 듯 보였다.

150억 원이라는 한국 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들인 액션 블록버스터 ‘태풍’(감독 곽경택·15일 개봉)의 두 주역인 장동건(33)과 이정재(32). 헝클어진 긴 머리에 카키색 코트와 청바지 차림의 장동건과 진회색 스트라이프 모직 재킷에 짧게 정돈된 헤어스타일의 이정재는 둘 다 만만치 않은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영화 속, 검게 그을린 피부에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눈빛의 탈북자 출신 현대판 해적 ‘씬’(장)과 이에 맞서는 자존심 강하고 반듯한 엘리트 해군 장교 강세종(이)의 이미지는 현실 속의 두 사람과 하나로 포개졌다.

남과 북에서 버림받은 뒤 타오르는 분노로 한반도를 향한 테러를 시도하는 씬과 조국을 위해 그의 복수를 막아내야 하는 강세종, 영화 속 두 남자는 창과 방패 사이. 하지만 지난달 28일 저녁 서울 도산공원 앞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같은 또래로 마음을 터넣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풍’에서 격돌한 태풍 같은 두 남자

▽장동건=워낙 큰 예산이 들어간 영화라서 대작의 주연이라는 자부심도 있지만 흥행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일 거야. 성공의 기준을 다른 작품처럼 연기나 작품성이 아니라 관객 수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이정재=그나저나 둘이 똑같은 비중으로 나오는 투 톱 영화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선의의 경쟁이니 맞수니 이런 얘기 많이 물어보더라. 난 강세종이 더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씬보다 내 역할이 탐났지?(웃음)

▽장=아니거든.(웃음) 강세종을 연기하는 장동건은 내가 생각해도 별로 보여줄 게 많지 않아. 난 씬처럼 뒤틀린 역할을 하는 데서 재미를 더 느껴.

▽이=“둘이 싸울 때 정말 찌르고 싶었어요”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이 흥미를 갖겠지.(웃음) 누가 더 멋있게 나오느냐가 아니라, 자기가 맡은 상황에서 각자 최선을 다하는 게 우선이지. 배우는 누구보다 금방 상대가 진심인지 아닌지를 느끼잖아. 영화 찍는 동안 늘 다친 데 없냐고 묻고 따뜻하게 챙겨 줄 때, ‘이 친구 정말 나를 생각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근데 맨 마지막에 둘이 서로의 심장에 칼끝을 겨누는 그 장면 찍을 때 정말 힘들더라.

▽장=단검으로 싸우는 액션이라 더 고생스러웠어. 막상 영화에선 3, 4분도 안 될 텐데 일주일 내내 찍었지.

▽이=우리 영화가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로만 알려져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헤어진 가족을 찾는 가슴 시린 아픔과 해후를 표현한 인간적인 영화라고 생각해. 씬과 누나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선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

▽장=액션 쪽에선 비주얼이나 스피디한 화면이 관객들의 기대를 채워 주고, 드라마 부분에선 강한 남자들의 이야기이면서도 감수성 면에서 멜로 영화라는 느낌도 줄 거야. 사실 나도 처음엔 씬의 아픔과 복수를 막연하게 생각했어. 근데 ‘태풍’ 줄거리만 들려줘도 탈북자들이 펑펑 울더라는 얘기를 듣고 ‘아, 정말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구나’ 하는 실감이 들더라.

▽이=그런 공감이 우리 영화의 매력이지. 강세종도 테러를 막아야겠다는 심정으로 투입됐지만 씬의 과거를 알면서 차츰 연민이 생기잖아.

○‘태풍’ 나간다, ‘킹콩’ 나와랏!

장동건(왼쪽) 이정재

(대화는 간간이 끊어지다 이어졌다. 핵심을 짚어 내는 장동건의 직관력, 이정재의 솔직함과 유머가 돋보였다. 차분한 성격이 비슷한 것 같다고 했더니 둘 다 아니라고 했다.)

▽장=블라디보스토크에서 촬영 마치고 러시아 스태프까지 200명이 모여 쫑파티를 열었어요. 분위기가 서먹서먹한데 정재 씨가 앞에 딱 나가더니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불렀어요. 그것도 안무를 곁들여서.(웃음) 그런 면에서 다르죠. 전 그런 거 못하거든요.

▽이=그것도 맨 정신에….(웃음)

(상대의 매력을 말해 달라고 하자 말이 술술 나온다.)

▽장=이번이 첫 공동작업이지만 알고 지낸 지는 8년쯤 됐나? 우리 또래 중 정재 씨만큼 다양한 역할을 접해 본 배우는 없을 거예요. 이번에야 비로소 관객들이 이정재란 배우에게서 원했던 모습을 200% 보여 준 것 같아요.

▽이=동건 씨는 아시아의 큰 별, 사람 좋고, 연기 좋고. 이런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웃음), 그렇게 얘기할 땐 분명 이유가 있더라고요.

▽장=정재 씨의 등장은 웃통 벗고, 동료들이랑 바닷가에서 럭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되죠. 단 몇 초로 지나가는 장면을 찍기 위해 술, 담배 끊고 음식 조절하고. 근육 만드느라 1년 넘게 준비하더라고요. 저두 이 작품 때문에 10kg쯤 살을 뺐지만, 촬영장에서 남들 밥 먹는데 굶기가 얼마나 고통인데요. 하여튼 살빼는 거는 설경구 이길 자신 없고, 몸 만드는 건 이정재 이길 자신 없어요.(웃음)

(한국 블록버스터 ‘태풍’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킹콩’이 같은 날에 개봉하는 것도 화제다.)

▽장=그래 봤자 원숭이 나오는 영환데요. 하하하. 이거 농담이에요.

▽이=재미는 물론이지만, 분단 상황에 있는 우리에게 찡한 감동을 줄 거라고 믿어요.

(2시간을 지켜봤지만 두 배우는 어떤 얘기든 열정으로도 냉정으로도 치우치지 않았다. ‘뜨거운 냉정’에 가깝다고나 할까. 인터뷰를 끝내며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이 사뭇 믿음직스럽게 보인 이유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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