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세 가지 색 ‘호러영화’…‘환생’ ‘크립’ ‘더 포그’

  • 입력 2006년 5월 3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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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낯설음에서도 발생하지만, 반대로 익숙함에서 유발되기도 한다. 공포의 대상은 모두 다르지만, 친숙한 생활공간에서 공포를 이끌어내는 공통점을 가진 호러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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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내달 8일 개봉 15세 이상▼

신인 배우 스기우라는 ‘기억’이라는 영화의 주연으로 발탁된다. ‘기억’은 1970년 사후세계 연구에 빠져 있던 오모리 교수가 호텔에서 자신의 아들과 딸을 비롯해 11명의 투숙객을 살해한 실화를 옮긴 영화. 스기우라는 한 여자아이의 섬뜩한 환영에 시달리고, 아이가 바로 자신이 연기할 오모리 교수의 딸이었다는 사실에 몸서리를 친다. 사건 희생자들의 혼령에 시달리던 스기우라는 자신의 전생을 둘러싼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공포영화 ‘주온’(2002년)으로 일약 스타가 된 일본 감독 시미즈 다카시의 신작 ‘환생’에는 ‘주온’을 통해 감독이 구축했던 독보적인 2가지 ‘공포의 메뉴’가 숨어 있다. 첫 번째 요소는 존속살인에 희생된 어린아이의 원혼을 다룬다는 점. 두 번째 요소는 매일 마주하는 일상을 공포의 공간으로 끌어 온다는 점. 원혼은 소파 뒤와 도서관 책장 뒤처럼 ‘익숙해서 안심되는’ 장소에서 나타난다.

영화는 살인마가 자신의 살해 행각을 셀프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관객이 고스란히 다시 보도록 만듦으로써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시각에서 살육을 재경험하도록 유도한다. 영화는 시작 후 1시간 동안은 ‘원혼과 환생’이라는 뻔한 내용을 보여 주는 듯하다가, 차츰 숨통을 조여 오면서 충격적인 반전과 더불어 핵폭발한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크립…내달 15일 개봉 18세 이상▼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에게도 늘 도도하던 여자 케이트(프랑카 포텐테). 늦은 밤 파티장을 나온 그는 지하철을 타려고 승강장 벤치에서 기다리다 깜박 잠이 든다. 깨어보니 출입문은 모두 잠긴 상태. 지하철역 내에 사는 노숙인 커플과 경비원에게 도움을 청해보지만 그들은 어둠 속 이름 모를 존재에 의해 잔혹하게 죽음을 당한다. 케이트는 컴컴한 지하공간 속에서 자신을 향해 접근해 오는 ‘무엇’을 피해 필사적으로 달아나려 한다.

영화 ‘크립(Creep)’은 지혜로운 착안점을 가졌다. 지하철에서 깜박 졸다가 홀로 남겨지는 데서 오는 공포는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볼 만한 체감적인 공포라는 점에서 말이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의 정석을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칼이나 쇠꼬챙이처럼 근접거리에서 사용하는 흉기를 통해 일어나는 끔찍한 살해나 시체 훼손 이미지로도 공포를 선물한다.

문제는 영화 시작 50분이 지나면서부터다. 일반적으로 공포영화는 △베일에 가려진 살인마가 전모를 드러내는 타이밍 △살인마의 정체 및 사연을 어떻게 풀어가는지에 따라 긴장도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종료 30여 분을 앞둔 비교적 이른 시점에 제 모습을 공개하는 살인마는 그 행동의 잔혹함에 비해 남은 시간을 이끌어갈 만큼의 카리스마나 사연이 다소 비현실적이고 취약해 보인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더 포그…내달 9일 개봉 15세 이상▼

밤길 고속도로를 달리다 짙은 안개에 갇혀 버렸을 때, 누구든 느꼈을 법한 공포를 다룬 영화다. 유령이나 잔인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안개 자체가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착안했다. 공포영화의 거장인 존 카펜터 감독이 제작자로 변신해 25년 전 자신이 감독한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외딴 바닷가에서 난파돼 억울하게 숨진 선원들의 원혼이 100년 만에 되살아나 마을 주민들에게 복수한다는 줄거리다. 북부 캘리포니아 안토니아 베이의 작은 어촌. 닉 캐슬(톰 웰링)은 낚시꾼들을 태우고 바다에 나갔다가 오래된 자루 하나를 건진다. 자루 속에는 거울, 시계 같은 낡은 물건들이 있었다.

그날 이후 마을에는 새떼가 이동하고 개가 까닭 없이 죽는 등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짙은 안개가 마을을 엄습한다. 이즈음 6개월 전 마을을 떠났던 캐슬의 여자 친구 엘리자베스 윌리엄스(매기 그레이스)가 돌아온다. 엘리자베스는 사람들이 불에 타 죽고 자신이 익사하는 악몽에 시달리는데 그 악몽은 차츰 현실이 된다. 윌리엄스는 자루 속 물건들을 실마리로 사건의 열쇠를 풀어간다. 영화는 마을 사람들의 악행으로 몰살당한 망자들의 과거와 살해가 이뤄지는 현재를 오가면서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한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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