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그녀는 왜 ‘꼬리’ 끊고 사라졌을까…영화‘도마뱀’

  • 입력 2006년 4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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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변치 않는 연인의 마음을 단 한번의 ‘사랑한다’는 대사와 입맞춤으로 표현해 내는 영화 ‘도마뱀’. 초등학교 같은 반 짝꿍이 되면서 알게 된 아리(강혜정)와 조강(조승우)은 10년이 흐른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만난다. 그러나 아리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은행원이 된 조강 앞에 8년 만에 다시 나타난 아리. 그녀는 인생의 세 번째 만남에서 고작 8시간을 함께 보낸 뒤 미국으로 떠난다고 한다. 그녀에겐 어떤 비밀이 있기에…. 사진 제공 영화사 아침
2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변치 않는 연인의 마음을 단 한번의 ‘사랑한다’는 대사와 입맞춤으로 표현해 내는 영화 ‘도마뱀’. 초등학교 같은 반 짝꿍이 되면서 알게 된 아리(강혜정)와 조강(조승우)은 10년이 흐른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만난다. 그러나 아리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은행원이 된 조강 앞에 8년 만에 다시 나타난 아리. 그녀는 인생의 세 번째 만남에서 고작 8시간을 함께 보낸 뒤 미국으로 떠난다고 한다. 그녀에겐 어떤 비밀이 있기에…. 사진 제공 영화사 아침
○조승우-강혜정 공인커플 출연 화제

극 중에서 연인을 연기했던 남녀 배우가 나중에 현실 속에서 진짜 연인이 된 경우는 드물지 않다. 그런데 현실 속 진짜 연인이 영화라는 가짜 공간에서 연인을 연기하는 것은 어떨까. 이런 호기심은 영화 ‘도마뱀’에 주어진 천형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약이기도 했지만 독이기도 했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20대 청춘 남녀 배우 조승우 강혜정이라는 인지도 높은 충무로의 공인 커플을 캐스팅함으로써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화제가 된 ‘도마뱀’이 개봉된다.

시사회에서 본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존재감을 잘 살린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웰 메이드 러브 스토리였다. 그러나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판타지적 소재를 현실 속 연인이 연기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영화 자체가 내세운 판타지적 흥미를 반감시키고 말았다.

영화 줄거리는 다분히 만화적이다. 자신을 외계인이라 말하며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소녀 아리(강혜정)와 그녀에게 마음을 줘 버린 초등학생 시절 이후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아리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일관된 순정을 바치는 순진남 조강(조승우)이 주인공이다.

러브 스토리 제목으로는 약간 뜬금없어 보이는 영화 제목은 아리가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자신의 보디가드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애완 도마뱀에서 나온 것. 도마뱀을 징그러워하는 아이들에게 “그건, 아주 오랜 옛날, 도마뱀이 지구를 지배한 적이 있기 때문에 또다시 지배당할까봐 부리는 엄살”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아리에게는 사실, 남들 앞에서 육신과 영혼을 무장해야 할 비밀이 있다.

○절제되고 자연스러운 연기 흡인력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 비극적인 운명을 안고 태어난 아리는 조강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또 자신 역시 조강을 사랑하면서도 다가서지도, 다가오지도 못하게 막는다. 영화는 초등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 때 조강을 갑작스럽게 떠났던 아리가 다시 그 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2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두 사람의 세 차례에 걸친 만남과 이별을 보여 준다.

극적인 사랑의 필수조건은 ‘금기’인 법. 영화는 아리의 태생적 비밀이라는 금기를 축으로 두 사람의 절실하면서도 금기를 뛰어넘기 위해 애쓰는 순애보를, 이 가벼운 시대에도 저런 묵직한 사랑이 있을까 싶게 그렸다.

감독은 무려 2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마음이 변치 않는 연인의 마음을 ‘사랑한다’는 대사도 단 한번밖에 없고 스킨십이라고 해야 겨우 입맞춤 정도에 그치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섹스와 집착, 변심이 트렌드라는 현실 속 연애를 뒤집었다.

순정남 조강이 아리에게 보여 주는 사랑의 행동들에는 디테일이 살아 있어 힘이 있다. 여기에 20대라는 ‘넘치는’ 시절을 살고 있는 두 배우가 보여 주는 절제되고 자연스러운 연기는 흡인력을 갖는다. 하지만, 상영 내내 스크린을 가운데 두고 영화 속 연인과 현실 속 연인이 넘나드는 착시를 경험하는 것은 그리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속고 싶고, 게다가 충분히 속을 자세까지 되어 있지만,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려 도저히 속을 수 없는 혼란스러움이 이 영화가 가진 업보다. 27일 개봉. 12세 이상.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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