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개그맨(Gagman), 한국적 코미디의 상징.

  • 입력 2001년 1월 11일 17시 03분


지금은 일상적인 방송용어가 됐지만 '개그맨(gagman)'이란 명칭은 사실 우리나라 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초만 해도 개그맨은 그리 친숙한 명칭은 아니었다.

‘개그(gag)’의 사전적 정의는‘연극에서 배우가 임기응변으로 넣는 대사나 익살, 우스운 몸짓’이다. 즉 무대 위에서 사전에 정한 콘티가 아닌 일종의 애드리브를 이용해 웃음을 유도하는 것을 가리켰던 것. 하지만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과장된 몸동작이나 표정이 아닌 재치있는 말로 상대를 웃기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웃음을 가리키는 말로 변용됐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그'를 정확히 표현하면 '스탠딩 코미디'라고 해야 한다.

'개그'가 본격적으로 방송가에 등장한 것은 70년대 중반부터. 이 시절 대학가 생맥주 클럽이나 명동의 '쉘부르' 같은 통기타 클럽에는 라이브 무대를 진행하고, 때로는 손님들과 즉석에서 토크쇼도 하는 재야 입담꾼들이 있었다. 이들은 당시 인기 높던 FM 심야방송이나 공개방송의 초대손님으로 출연해 청취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전까지 방송의 코미디는 과거 악극단 시절 무대에서 내려온 슬랩스틱식 코미디와 5분 안팎의 콩트가 주류를 이루었다. 배삼룡, 구봉서, 서영춘 등 당시 인기 절정의 코미디언들의 주특기도 특이한 표정이나 동작으로 펼치는 코믹 연기였다. 하지만 한참 청소년 문화가 싹을 피우던 70년대 중반 참신하고 새로운 것을 찾던 청소년들에게 기존 코미디는 진부하거나 저질로 치부됐다. 이때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대학가를 무대로 활동하던 재야 코미디언이다.

대학가와 라디오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젊은 입담꾼들이 본격적으로 TV에 진출한 것은 75년 TBC의 <살짜기 웃서예>. 한국 TV 최초의 개그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살짜기 웃서예>는 당시 연출자로 갓 데뷔했던 김웅래 PD(현 KBS 제작위원)에 의해 만들어졌다. 기존 코미디와 달리 2∼3분 안팎의 짧은 코너와 이른바 '참새 시리즈'와 같은 학생들의 익살 시리즈, 유행어 등을 가지고 스피디하게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시작과 함께 많은 화제를 낳았다. 당시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던 임성훈 최미나 전유성 허원 허참 등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로 부상했다.

이때부터 이들이 방송에서 보여준 익살을 가리키는 말로 '개그'란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살짜기 웃서예>는 그후 1년 정도 방송을 하다 막을 내렸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등장한 개그맨들은 이후 <젊음의 행진> <영11> 같은 청소년 프로그램을 무대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코미디언과 개그맨은 어떻게 구분을 할까? 방송담당이나 연예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사람에 따라 코미디언, 개그맨으로 호칭을 구분하는데 그 기준이 되는 사람이 바로 전유성이다. <살짜기 웃서예>를 통해 시청자에게 얼굴을 알린 그는 개그맨 1세대 중 코미디를 지키고 있는 유일한 '현역'이다. 그래서 그보다 방송 활동이 앞선 사람은 코미디언, 뒤에 등장한 이는 개그맨으로 구분을 한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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