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뉴미디어를 가다]<1>年 46만원 받고 하루 기사 2건 올려도… IT 거물들이 열광

하정민 기자 입력 2017-11-27 03:00수정 2017-12-0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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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IT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
年399달러 구독자 1만명
《 정보기술(IT) 혁명, 소셜미디어와 검색 플랫폼의 거대화, 가짜뉴스 등으로 세계 언론이 유례없는 위기를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보도 양식과 비즈니스 모델로 저널리즘 혁신을 이끄는 뉴미디어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 뉴미디어 업체들을 만나 이들의 성공 방식, 한국 언론이 배워야 할 점 등을 5회에 걸쳐 소개한다. 》
 

100% 구독료로 운영되는 미국 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의 창업주 제시카 레신이 샌프란시스코의 본사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 도중 활짝 웃고 있다. 샌프란시스코=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수입의 100%를 구독료로 충당하는 언론, 광고가 전혀 없는 언론, 페이지뷰(PV)나 방문자 수가 아닌 기사의 질과 깊이로 승부하는 언론….’

아직은 현실의 높은 벽에 막혀있는 미디어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러나 이 목표를 현실화하고 있는 언론이 있다. 2013년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범한 신생 정보기술(IT) 전문 온라인 매체 ‘디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이 그 주인공.

이 독특한 뉴미디어의 창업주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출신인 제시카 레신(34). 그는 중학교 때부터 교내 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언론인을 꿈꿨다. 2001년 하버드대 역사학과에 입학해 ‘하버드 크림슨’ 기자로 활동했다. 2005년 대학 졸업 후 WSJ에 입사해 8년간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을 취재하며 IT 전문 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주요기사
레신은 왜 WSJ라는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미디어 스타트업을 차렸을까. 왜 ‘첨단 기술의 요람’이라는 실리콘밸리에서 뉴미디어를 운영하면서도 ‘100% 구독료’라는 정공법을 택했을까. 9월 21일 한국 언론 최초로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복판 파이낸셜디스트릭트에 위치한 디인포메이션 본사에서 그를 만나 뉴미디어의 미래를 들었다.
 
○ ‘연 399달러 구독료’가 아깝지 않은 기사로 승부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베이브리지’가 보이는 초고층 건물의 33층은 디인포메이션 본사다. 벽면 전체가 지난 4년간 이 매체가 보도한 각종 특종 기사로 가득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 검은색 스웨터 차림의 레신은 ‘뉴미디어 업계의 총아’가 아닌 수수한 대학원생처럼 보였다. 하지만 창업 이유를 설명할 때는 자신의 소신과 회사의 방향, 미디어의 미래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레신은 “WSJ 같은 대형 언론이 ‘양’에만 집중하는 데 실망했다”고 지적했다. “기성 언론의 비즈니스 모델은 완전히 무너졌다. 트래픽과 광고 수익만 좇는 언론을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디인포메이션을 통해 독자가 자발적으로 돈을 지불하고픈 욕구를 느낄 정도로 좋은 기사만 쓰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디인포메이션은 웹사이트(theinformation.com)에 하루 평균 2건의 기사를 올린다. 소속 기자가 20명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적은 수치. 그러나 기사의 대부분은 심층 보도물이다. 세계적 IT 기업의 최상층부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 회사의 방향과 전략을 둘러싼 논쟁 등을 몇 달간 취재한 것들이다. 다른 매체에서 볼 수 없는 깊이 있는 보도가 많아 뉴욕타임스(NYT), WSJ 등 기성 언론들이 디인포메이션발 기사를 종종 인용한다.

대표적 사례가 올해 3월 단독 보도한 트래비스 캘러닉 전 우버 창업자(41)의 ’한국 술집 방문기’다. 캘러닉의 전 여자친구 개비 홀즈워스는 디인포메이션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캘러닉과 우버 임원들이 2014년 서울 출장 당시 여성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에 갔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며 우버 내에 각종 성차별 문화가 만연해 있다”고 폭로했다.

이후 여러 언론이 우버 내 성차별에 대한 추가 보도를 쏟아냈다. 결국 캘러닉은 3개월 후 사임했다. IT 업계 전반에 미치는 디인포메이션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독자들은 이런 기사에 열광했고 연간 399달러(약 46만 원)의 구독료를 냈다. 레신은 “현재 유료 구독자가 1만 명 이상”이라며 “구독료로 25명 내외인 직원 월급과 사무실 운영비를 충당할 뿐 아니라 약간의 흑자도 낸다”고 설명했다.

본사 회의실 벽면에는 지난 4년간 이 매체가 보도한 각종 특종 기사가 빽빽하게 붙어 있다. 윗줄 중앙에 ‘우리가 이 기사를 가장 먼저 썼다’는 문구가 보인다. 두번째 사진은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복판 파이낸셜디스트릭트에 위치한 디인포메이션 본사 사무실 전경. 샌프란시스코=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퓰리처 수상자’로 채운 뉴스룸

디인포메이션에 소속된 기자 상당수는 퓰리처상을 받았거나 WSJ, 블룸버그, 로이터, 포천 등 전통 언론의 스타 기자 출신이다. 이들은 ‘보장된 미래’ 대신 ‘작지만 혁신적인’ 뉴미디어를 택했다.

발행인 겸 편집국장 마틴 피어스는 WSJ, 뉴욕포스트 등에서 일한 36년 차 기자. 2003년 퓰리처상 ‘분석 보도(explanatory reporting)’ 부문을 받은 베테랑이다. 레신은 과거 자신의 상사였던 피어스를 회사 출범 10개월 만인 2014년 9월 영입했다.

지난해 3월 합류한 샤이 오스터도 2007년 퓰리처상 ‘국제 보도(International Reporting)’ 부문을 받은 인물이다. 20년 넘게 여러 언론의 아시아 지사에서 일하며 중국에 관한 숱한 특종을 쏟아낸 ‘중국통’이다. 그는 현재 홍콩 소재 디인포메이션 아시아 지국장으로 일하며 알리바바, 샤오미, 소프트뱅크 등 아시아 대형 IT 기업 기사를 쓰고 있다.

레신은 “우리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각종 특종과 단독 기사를 많이 썼지만 소송과 잡음에 휘말린 적이 없다. 실력 있는 언론인이 ‘사실과 정확성’을 바탕으로 공들여 쓴 기사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자들이 한 달 혹은 몇 개월에 기사 한 건을 쓰지만 간섭하거나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자들의 심층 취재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 유명인 구독자의 커뮤니티 활용

디인포메이션의 독자 활용법도 독특하다. 웹사이트 상단의 ‘커뮤니티’ 코너를 누르면 ‘기여자(contributors)’라는 이름과 함께 유료 구독자의 사진과 프로필이 뜬다. 디인포메이션의 독자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독자 대부분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주, 에번 스피걸 스냅챗 창업주 같은 IT계 거물,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는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이들 유명인사의 실명과 프로필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기사 외의 고급 정보를 독자에게 추가로 제공하는 셈이다. 독자가 댓글을 달 때도 그의 실명과 사진이 함께 게재된다. 기자와 구독자, 구독자와 구독자가 서로 소통하고 인맥을 구축하도록 배려했다.

레신은 구독자를 위한 오프라인 행사도 종종 연다. 저커버그와 함께하는 점심 파티, CBS 방송의 유명 앵커 게일 킹이 참석하는 칵테일 파티가 대표적이다. 유료 구독자들은 이런 행사에 초대받아 미국 유명인사와 교분을 맺는다. 자연스럽게 이 모임을 마련해 준 레신의 팬이 된다. 당연히 유료 구독자도 더 늘어난다.

자신과 친분이 있는 유명 기업들을 기사로 비판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을까. 레신은 “주변인의 존경을 얻으려면 더 정직하고 정확한 기사를 써야 한다”며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한 타인과의 갈등은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는 전통 미디어가 눈에 띄게 쇠퇴하는 상황에서 저널리즘의 존재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세계 미디어 업계의 혼란과 무질서는 오히려 ‘퀄리티 저널리즘’의 기회다. 광고나 PV에 구애받지 않는 훌륭한 기사, 소셜미디어와 알고리즘에 좌우되지 않는 기사야말로 사람들이 정확한 정보를 통해 옳은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도구다.”

레신은 일각에서 디인포메이션을 ‘IT 전문 매체’라고 국한한 것을 두고 “IT는 자동차, 소매 등 기존 굴뚝 산업을 모두 총괄한다”고 했다. IT 산업에서 일어나는 결정이 인류 전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구독자들이 좋은 기사를 읽고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안내하겠다는 얘기다.

그는 회사 경영에 전념하느라 최근 기사 쓸 기회가 거의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현업으로 돌아가면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을까. 레신은 “무인 자동차와 핀테크 산업에 관심이 많다. 나의 본질과 천성은 언제나 기자”라며 활짝 웃었다.
  
디인포메이션 소개 동영상
▼ 부친-남편 도움… 사실상 가족경영 ▼
 
스타기자 발굴에 각별히 공들여… “뛰어난 사람과 일하는 게 가장 중요”
 
디인포메이션의 창업주 제시카 레신(가운데)과 남편 샘(오른쪽), 남동생 맷 바셀라로. 제시카 레신 페이스북
제시카 레신은 이른바 ‘미국판 금수저’다. 가족 모두 미국 명문대를 졸업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았다.

그와 ‘디인포메이션’의 성공에 큰 도움을 준 세 사람이 있다. 바로 아버지와 남편, 남동생이다. 디인포메이션이 가족기업 형태로 운영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의 부친은 대형 사모펀드 TPG캐피털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제롬 바셀라로(65). 브라운대 경제학과,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으로 2006년 TPG에 합류하기 전 맥킨지 컨설팅에서 28년간 근무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 등 세계적 대기업의 인사 전략 자문을 담당한 조직관리 전문가다. 그는 딸이 어렸을 때부터 늘 “훌륭한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레신은 “아버지의 말에 100% 동의한다. 뛰어난 기자만이 훌륭한 기사를 쓸 수 있다. 그래서 스타 기자를 채용하는 데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제시카 레신 디인포메이션 창업주 인터뷰

레신의 동갑내기 남편 샘(34)은 하버드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주의 친구다. 2014년까지 페이스북 상품 관리 담당 부사장으로 일한 정보기술(IT) 분야의 젊은 실력자다. 2014년 9월부터 디인포메이션에서 ‘인턴’으로 재직하며 아내를 ‘외조’해 왔다. 이와 별도로 인공지능(AI) 관련 스타트업 ‘핀’의 공동 창업자로도 일하고 있다.

레신의 남동생 맷 바셀라로는 브라운대에서 기호학을 전공하고 폭스, 소니 등 미 방송사 등에서 동영상 제작 관련 일을 했다. 현재 디인포메이션의 비주얼 콘텐츠 관리를 맡고 있다.
 
샌프란시스코=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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