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직종’ 사랑니 뽑기만 고집… 날마다 ‘대공사’… <9>서울 ‘사랑이 아프니’치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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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착한 병원]

‘사랑이 아프니’치과 진료실에는 사랑니 발치와 스케일링 관련 기구 외에 다른 치과 진료 기기는 일절 찾아볼 수 없다. 김항진 사랑이아프니 치과 원장이 15일 병원을 찾은 한 환자에게 사랑니 발치 수술을 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사랑이 아프니’치과 진료실에는 사랑니 발치와 스케일링 관련 기구 외에 다른 치과 진료 기기는 일절 찾아볼 수 없다. 김항진 사랑이아프니 치과 원장이 15일 병원을 찾은 한 환자에게 사랑니 발치 수술을 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사랑니만 진료하면서 버틸 수 있겠어?”

지난해 9월, 김항진 ‘사랑이 아프니’치과 원장(37)이 사랑니 발치 전문 치과 ‘사랑이 아프니’를 개원하자 선후배 상당수가 우려를 했다. 사랑니 발치는 위험한 수술인데도 의료수가가 낮아 동네 치과에선 꺼리는 치료이다. 사랑니 진료만 하겠다는 건 ‘수익은 어느 정도 포기하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구강악안면외과를 전공한 김 원장은 사랑니 진료만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그렇게 ‘사랑이 아프니’치과를 시작한 지 9개월째.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역 부근 뒷골목 구석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매일 끊이지 않는다.

○ 대학병원에선 대기만 한 달 이상

“사랑니 발치는 3D 직종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위험하고….”

김 원장은 “사랑니 진료가 정말 그렇게 힘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김 원장 말을 빌리자면 ‘치과계의 쓰레기통’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다.

사실이다. 사랑니는 잇몸에 매복된 상태에 따라 난이도가 천차만별이다. 신경에 가까이 있을 경우, 잘못 건드리면 위험하다. 심하면 잇몸을 절개하고 사랑니를 조각내 뽑아야 하는 등 ‘대공사’를 감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까다로운 데 비해 의료수가는 3만∼4만 원 수준. 이 때문에 선뜻 하겠다고 나서는 치과 의사가 드물다. 환자는 할 수 없이 대학병원으로 가지만 대기 환자가 많아 보통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

덕분에 ‘사랑이 아프니’치과를 찾는 환자가 꽤 많은 편. 대학병원에서 한 달을 기다릴 바에야 사랑니 발치 전문병원을 찾는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하루 사랑니 발치 환자만 15명 정도”라며 “보통 사랑니 발치는 하루 5명 정도만 해도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매일 얼음찜질을 안 하면 손이 붓고 아파서 못 견딘다”는 김 원장은 인터뷰 내내 파란색 얼음팩을 손에 대고 문질렀다.

○ 당일 발치 원칙으로 환자 부담 줄여

김 원장은 “진료 전 주의사항을 철저히 일러주는 것은 의사의 의무”라고 여긴다. 발치 부근의 실밥을 풀려고 15일 병원을 찾은 직장인 이희주 씨(24)는 “치료 전 ‘피나고 붓거나 감염될 수 있다’ 등 주의사항을 자세히 듣고 ‘진료에 동의한다’는 서명까지 했다”며 “미리 증상을 알 수 있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환자에게 병원을 찾는 부담을 덜어주고자 ‘당일 발치’를 원칙으로 삼는 것도 돋보인다. 대개 다른 치과에서는 컴퓨터단층촬영(CT) 등으로 사랑니 위치 및 상태를 확인한 뒤 발치 날을 따로 잡지만, 이곳에선 진료와 발치를 하루에 끝내는 걸 권장한다. 김 원장은 “보통 발치, 소독, 실밥 제거 등으로 한 번 발치하면 3번 정도 병원을 오게 된다”며 “한 번이라도 병원에 덜 오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 환자와 카톡으로 정보공유

김 원장은 매일 진료를 마치고는 그날 발치한 환자 모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다. 그날 찍은 사랑니 CT 사진과 함께 ‘지혈이 잘됐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등을 물어본다. “문제가 있는 분들은 바로바로 카톡에 답을 하거나 전화도 한다”며 “언제든 소통할 수 있게 블로그와 휴대전화를 활짝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치과를 방문한 환자들은 “수술 후에도 원장과 언제든 상담할 수 있다”며 큰 위안을 얻고 있다.

사랑니 치료만 하는 줄 모르고 왔다가 허탕 친 환자들은 없었을까. 김 원장은 “많지는 않지만 간혹 있다”며 “어쩔 수 없이 돌려 보낸다”고 말했다. 진료실에는 발치 전 치석 제거를 위한 스케일링 도구, 기타 발치기구 외엔 다른 기구들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랑이 아프니’치과를 찾는 환자들 중 3분의 2는 다른 치과에서 의뢰받은 사람들. 김 원장은 간혹 사랑니 발치를 하다 땜질, 신경치료 등 다른 치과 진료가 필요한 곳이 발견되면 의뢰받은 치과 쪽으로 연결해 주고 있다.

김 원장은 “사랑니 전문 치과를 개원하기 전 봉직의(페이닥터)로도 일해 봤고 일반 치과 진료도 다 보고 그랬지만 스트레스가 상당했다”며 “사랑니 치료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만큼 지금은 환자가 얼마나 오고 매출이 어떻고 이런 것들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전했다.

치과를 찾는 환자의 3분의 1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 진료를 만족스럽게 끝낸 환자들이 인터넷 개인 블로그 등에 병원을 소개하는 글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 김 원장은 “환자들이 카톡으로 고마움을 전해오는 등 만족스러워 할 때마다 힘이 난다”며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선정의원 한마디]“수술 난이도 천차만별… 적정수가 보장돼야”▼

‘사랑이 아프니’치과는 남들이 꺼리는 사랑니 발치를 집중 진료한다는 점에 있어 착한 병원 선정 위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구강악안면외과를 전공한 치과 의사들은 주로 양악수술, 턱 수술, 임플란트 등의 진료를 많이 하고 있다. 의료수가도 낮고 위험부담이 큰 사랑니 치료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보면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는 평이다.

와이즈요양병원장인 배지수 위원은 “대학병원에서 사랑니 발치 진료를 받으려면 보통 40∼50일 걸리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환자들에겐 좋은 소식”이라며 “남들이 귀찮아하는 영역을 도맡아 하고 나선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사랑니 진료를 하지 않는 치과와의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다는 것도 주목받았다. 배 위원은 “충치 치료, 땜질 등 다른 치과 진료를 하지 않고 원의뢰자에게 돌려보낸다면 다른 치과 선생님들도 의뢰를 많이 할 것 같다”며 “의사와 치과를 찾은 환자들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니 진료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만큼 적정 수가가 보장돼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서울치과의사회 전 홍보이사인 김세진 위원은 “사랑니 발치는 환자들 케이스에 따라 진료 난이도 차이가 상당한 편”이라며 “수술 난도가 높은 경우만이라도 적정 수가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대한한의사협회 대변인인 장동민 위원도 “고가의 비급여 진료 대신 필수 급여진료를 선택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낸다”며 “급여 진료만으로도 경영 유지가 될 수 있게끔 수가 인상이 적절히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우리 동네 착한병원’의 추천을 기다립니다. 우리 주변에 환자 중심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이 있으면 그 병원의 이름과 추천 사유를 동아일보 복지의학팀 e메일(health@donga.com)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사랑니#우리동네착한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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