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신문고]“선택할 수 없는 선택진료비” ― 반혼수상태 환자 부모의 항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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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아닌 1년차 전공의가 마취하다 사고”

환자들이 병원비를 내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환자단체는 “선택진료비를 내겠다는 취지의 동의 사인을 받지만 어떤 명목으로 얼마를 내야 하는지 정확한 설명을 듣지 못한다”고 말한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환자들이 병원비를 내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환자단체는 “선택진료비를 내겠다는 취지의 동의 사인을 받지만 어떤 명목으로 얼마를 내야 하는지 정확한 설명을 듣지 못한다”고 말한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이래서 문제

136일간 암으로 입원한 환자의 진료비 명세서. 351만2899원을 선택진료비 명목으로 냈다. 선택진료비는 검사, 영상진단, 처치수술, 마취 등을 대학교수급 의사가 할 경우 추가로 내는 금액이다. 환자단체연합회 제공
136일간 암으로 입원한 환자의 진료비 명세서. 351만2899원을 선택진료비 명목으로 냈다. 선택진료비는 검사, 영상진단, 처치수술, 마취 등을 대학교수급 의사가 할 경우 추가로 내는 금액이다. 환자단체연합회 제공
“선택진료라고 하지만 대형병원에서는 ‘선택’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대학교수가 마취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전공의(레지던트) 1년차가 했습니다. 현재 아들이 반혼수상태입니다. 동의서에 나온 대로 대학교수들이 실제로 치료하고 돈을 받는 건지, 병원이 부당하게 수익만 챙기는 데 악용하는 것은 아닌지를 보건당국이 철저히 조사해 주십시오.”(손영준 씨·24의 어머니 우미향 씨)

병원에서 진료비를 수납하고 받는 영수증엔 여러 항목이 찍혀 나온다. 이 가운데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이 바로 선택진료비다.

선택진료비란 대학교수급 의사나 10년차 이상 전문의로부터 진료나 처치를 받을 경우 내는 추가 비용을 뜻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비용이다. 보통 △진찰료의 55% △입원료의 20% △마취료의 100% △처치 및 수술료의 100% 이내에서 선택진료비가 부과된다.

우미향 씨는 선택진료비 제도가 원래 취지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건강신문고’를 두드렸다.

5년여 전인 2007년 2월 3일, 우 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 손영준 씨(당시 19세)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응급실에 와있다는 전화였다. 다행히 다리 골절 외에는 다친 곳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래도 골절 수술을 해야 하니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오전 10시경, 4시간 후 수술하니 금식하라고 의료진이 말했다. 수술 시간이 다 돼가자 의사는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요청했다. 자세히 읽어볼 틈도 없었다. 병원 복도에 서서 서둘러 동의서에 사인했다.

2시간 반이 걸린다는 수술은 6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의료진이 우 씨 부부를 찾았다. 의료진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하반신만 마취해 수술을 진행했다. 그런데 마취가 풀리는 것 같아 전신마취로 돌리려 했다. 그 도중에 심정지가 왔다. 깨어나지 않아 조치를 하고 있다.”

손 씨의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고 있었던 것. 병원 측은 마취과 교수가 마취해독제를 넣었으니, 오후에 깨어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육사생도를 꿈꾸던 건강한 아들은 100일 된 아기와 비슷한 지능으로 돌아갔다.

가족은 마취과 교수에게 따졌다. “일요일에 수술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어느 교수가 일요일에 나와서 마취를 하겠느냐. 레지던트 1년차가 마취를 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우 씨는 “경험이 많은 교수에게 환자를 맡기기 위해 추가 비용을 내는 게 선택진료 제도가 아닌가. 그런데 레지던트에게 맡겼다. 이건 병원의 사기다. 만약 이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아들을 홀로 수술실에 보내지 않았을 거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우 씨는 “선택진료 제도의 취지에 맞게, 누가 어떻게 치료를 하는지 환자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에게는 선택진료비 부담도 상당하다. 지영건 차의과대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선택진료 제도의 지불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2009년 말 기준으로 선택진료비 추정치는 1조1113억 원에 달한다.

조기 위암 판정을 받고 입원한 A 씨(56)는 “검사비용과 입원비가 345만 원가량 나왔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니 환자의 본인부담금은 110만 원이었다. 이 중 선택진료비가 30만 원이었다”고 했다. 환자단체는 “중증일수록, 장기간 입원할수록 선택진료비 부담이 크다”고 호소한다.

선택진료비가 최종적으로 얼마나 나올지도 예측할 수 없다. 이 또한 환자의 불만이다. 원무과에서 계산할 때 일일이 내용을 꼼꼼하게 따져볼 수 있는 환자가 얼마나 되겠냐는 것이다.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윤인순 의원(민주통합당)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10개 국립대학병원의 선택진료비 관련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1년 총진료비 수입 2조6500억 원 중에서 6.98%(1851억 원)가 선택진료비로 나타났다. 2007년 1365억 원에서 35.6%가 늘었다.

● 보건복지부의 답변

선택진료 의사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선택진료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10월부터 시행하는 중이다.

전에는 진료과목별로 ‘비(非)선택진료 의사’를 지정하되 휴일 근무를 의무화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비선택진료 의사가 진료하는 날이 아니면 선택진료 의사를 지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이 ‘비선택진료 의사’를 항상 1명 이상 배치하고 있다. 또 정해진 의사에게 선택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서 진료비확인제도를 통해 병원으로부터 선택진료비를 돌려받을 수 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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