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신문고]“마취처방 아무나 못하게 막아달라” -홍기혁 상계백병원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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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사고 속출… 전문의 없는 관행 여전
마취통증의학회 “이런 게 문제”

홍기혁 교수
홍기혁 교수
“마취는 고도의 전문 의료행위다. 그러나 현행 의료법상 의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 부작용이 속출한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마취 수련과정을 마친 전문가가 실시하는 게 바람직하다. 의료법도 이에 맞춰 바꿔야 한다.”(홍기혁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차기 이사장·상계백병원 교수)

건강을 확인하려고 수면내시경 검사를 받는 이가 많다. 이때 누가 마취를 담당할까. 마취 전문의사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의료법상 의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비뇨기과, 산부인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도 마취를 할 수 있다. 심지어 일부 병원에서는 의사가 아닌 사람이 맡기도 한다.

11월 초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이사장에 취임하는 홍기혁 상계백병원 교수가 ‘건강신문고’를 울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 교수는 얼마 전 치과에서 충치 치료를 받던 4세 어린이가 숨진 사고를 예로 들었다. 진료기록을 보면 마취제 4종류를 투약했다고 돼 있다.

홍 교수는 “마취란 약물만 주입하는 단순노동이 아니다. 작은 실수만으로 환자가 치명적 상태가 되지 않는가. 전문의의 세심한 관찰과 주의가 필요한 고도의 의료행위다”고 말했다.

의학적으로 마취는 약간 졸린 듯한 가벼운 심신 진정 상태에서부터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진정 상태, 움직임까지 사라지는 상태까지를 아우른다. 마취를 누가 해도 건강보험 급여기준에 따른 수가(진료비)는 동일하다. 홍 교수는 전문의가 마취를 담당하면 건강보험 수가를 더 올리거나, 다른 진료과 의사의 마취행위를 건강보험 혜택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의 ‘밥그릇’을 키우려는 의도는 아닐까. 홍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4세 어린이의 사망을 비롯해 사고가 잇따르고, 프로포폴과 같은 정맥마취제가 남발되니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마취 전문의만 이런 약물을 다루도록 한다면 사고가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홍 교수는 지난해 9월부터 올 4월까지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한의사협회, 마취통증의학회가 참여한 ‘마취 안정성 강화 태스크포스(TF)’에서도 이 점을 강조했다. 마취통증의학회는 ‘감시하 마취 관리(MAC)’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MAC는 환자의 안전에 초점을 맞춘 마취로 요약할 수 있다. 위와 대장 수면내시경의 사례를 들어 설명해 보자. 현재는 의료진이 수면제를 투여한 뒤 환자가 잠이 들면 내시경 검사를 한다. 그 이후로는 검사에 집중하므로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얼마 전에는 치과 치료 도중 사고가 났다.

MAC를 시행하면 어떻게 달라질까. 우선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진료실에 배치된다. 이 의사는 ‘수면 시술’을 하기 전에 환자를 면담해 병력과 혈압을 체크한다. 또 수면제를 투여하면 기도가 폐쇄될 우려가 있는지를 평가한 뒤 가장 적절한 수면제 양을 결정한다. 환자가 수면 상태가 되면 다른 의료진은 검사에만 전념하고,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점검한다. 환자에게는 가장 안전한 시술이다.

국내에서는 왜 이렇게 하지 않을까. 홍 교수는 “건강보험 적용 기준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면내시경 검사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의사가 환자에게 비급여 검사임을 알리고, 환자는 이에 동의하고 전액을 부담하는 식이다. MAC의 경우 이런 기준 자체가 없어 환자가 돈을 부담하려고 해도 시술을 할 수 없다. 홍 교수는 “환자를 위해서라도 MAC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기준이 빨리 만들어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 보건복지부 답변 ▼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마취를 하는 경우에 대해서 수가를 올리려면 다른 진료과 의사가 마취를 할 때보다 안전하고 품질이 높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마취통증의학과에 대해서만 수가를 올려주면 다른 진료과가 반발할 수 있다. 외과나 흉부외과에 대해서 수가를 좀 더 올린 이유는 이 분야 레지던트의 지원율이 낮아서다.

MAC 도입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수가를 인정해달라는 신청서를 냈다고 알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절차를 밟아 검토할 방침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마취처방#마취사고#마취통증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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