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64>팔자, 그 원초적 평등성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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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타령 말고 운명을 조율하라

고미숙 고전평론가
고미숙 고전평론가
팔자(八字)라는 낱말의 뉘앙스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사실 대부분의 팔자는 ‘사납다’. 사주(四柱)를 뽑아 보면 오행을 두루 갖춘 예는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사방이 꽉 막혀 순환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뿐인가. 도처에 그 무섭다는 ‘살(煞)’이 득시글거린다. 도화살, 역마살, 명예살 등. 그런데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팔자는 평등하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적 농담이자 역설이다. 세상의 모든 팔자는 험궂은데, 바로 그렇기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 기막힌 진리!

첫 번째 근거. 누구든 여덟 개의 글자뿐이라는 사실. 재벌 2세든 톱스타든 청년백수든 여덟 개 이상의 글자를 가질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는 엄청난 차별이 있는 듯 보이지만 운명의 차원에선 누구도 ‘팔자’ 이상을 누릴 수 없다. 만약 엄청난 부와 대단한 능력을 타고났다면, 그는 그 대신 다른 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장궈룽(張國榮), 스티브 잡스, 마이클 잭슨의 인생을 보라.

두 번째 근거. 모두가 태과(太過), 불급(不及)의 처지로 세상에 온다는 것. 한마디로 다 일그러져 있다. 그래서 괴롭고 아프다. 하지만 그 괴로움과 아픔이 곧 삶의 동력이기도 하다. 원수로 여겼는데 은인이 되고, 은인이라 여겼는데 원수가 되는 ‘아이러니’가 가능함도 이 때문이다. 이것들 사이엔 어떤 위계도 없다. 이것을 얻으면 저것을 잃고, 저것이 오면 이것이 갈 뿐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주어진 팔자 안에서 자신의 운명을 최대한 조율하는 일이다. 뭔가가 심각하게 결핍되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장애인 시설 승가원의 ‘두발 꼬마’가 그런 경우다. 이 꼬마는 팔이 없이 두 발로만 살아간다. 두 발로 밥도 먹고 춤도 추고 못 하는 게 없다. 꼬마는 말한다. 팔이 없어도 괜찮다고, 두 발로도 충분하다고.

그런 점에서 팔자는 용법(用法)이다. 여덟 개의 글자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유전생물학의 이치 또한 다르지 않다. “이제 과학자들은 유전자를 개별 명령의 집합이 아니라 변화에 반응할 수 있는 총체적인 조절 구조를 갖춘 복잡한 정보망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샤론 모알렘 ‘아파야 산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유전자 자체도 고정된 게 아니다. 특정화합물이 특정 유전자에 달라붙어 그 유전자가 표현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것. 즉 유전자를 바꿀 수는 없지만 발현에는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사주명리학의 원리 역시 그렇다. 여덟 개의 글자가 지닌 본래의 속성이 아니라, 그것들이 결합하고 배열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운명이 펼쳐진다. 문제는 이런 원리가 사회의 조건과 통념에 의해 가려진다는 데 있다. 부귀는 당연히 누리고 빈천은 무조건 피하고 싶은 욕망이 가장 큰 장벽이다. 원초적 불균형에다 이런 식의 탐욕이 중첩되면서 차별이 이중삼중으로 증폭되는 것이다. 그런 망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은 자신의 팔자를 원망하거나 한탄할 수밖에 없다. 이 대책 없는 팔자타령의 고리를 끊고 어떻게 자기 운명의 능동적 용법을 터득할 것인가? 이는 모든 사람이 풀어야 할 숙제이자 소명이다. 고로 모든 팔자는 평등하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고미숙#몸과 우주#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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