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뷰티/Dr.Kim의 시원한 性의학]영조의 장수비결, 바른 식습관-활발한 성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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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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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흑룡(黑龍)의 해가 밝았다. 예로부터 용은 ‘임금’을 상징했는데, 궁중에는 왕자 생산을 위한 특별한 성문화가 존재했다. 왕과 왕비가 침전으로 사용한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의 ‘대조’는 ‘큰 공덕’을 일컫는다. 왕자 생산이 임금의 가장 큰 의무이자 공덕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왕과 왕비가 한건물에 거처했지만, 합궁은 길일을 골라 상궁이 정했다. 공식적으로는 1주일에 이틀 정도였지만 금슬이 좋을 경우나 그렇고 대부분은 가뭄에 콩 나듯이 합궁을 했다. 왕비와의 정략결혼 탓에 왕의 눈은 후궁들에게 쏠린 적이 많았다.

합궁일이 정해지면 상궁들이 침전에 금침을 두 벌 나란히 깔았다. 왕과 왕비가 침전에 들면 촛불을 끄고 물러 나왔지만, 옆방에서 귀를 곤두세우고 살폈다. 만에 하나 발생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왕은 무치(無恥)라고는 하나 민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왕은 대부분 총애하는 후궁의 처소로 자주 행차를 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밤을 보냈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우리나라는 왕의 성문화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지만, 중국의 문헌에는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궁중 법도인 예제(禮制)에 의해 비빈의 수뿐만 아니라, 지위에 따라 황제와 방에 머물 수 있는 시간까지도 정해져 있었다. 황제를 모시는 여인의 수가 많아 동침 순서를 관리하는 ‘여사’라는 관직까지 있었다.

여사는 황제가 여인과 침실에 들 때마다 대가 붉어 ‘동관’이라고 불린 붓으로 이를 기록했다. 특히 황제가 사정하는 시간을 정확하게 기록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중국은 잉태될 당시의 사주로 운명을 점쳤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가장 장수한 왕은 83세에 승하한 영조다. 왕들의 평균 수명인 43세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오래 살았으며, 재위기간도 반세기가 넘는다. 영조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로 바른 식습관과 활발한 성생활을 꼽을 수 있는데, 조선 전기의 학자였던 홍유손의 장수법을 실천했다. 99세까지 장수한 홍유손은 76세에 결혼해 아들을 낳은 인물이다.

영조는 홍유손의 장수법을 좇아 소식을 하는 한편 식사시간을 반드시 지켰고, 잡곡밥과 같은 거친 식사를 즐겼다. 또한 60대 중반에 10대의 정순왕후를 맞아들여 말년까지 부부생활을 가졌다.

김재영 퍼스트비뇨기과 원장
김재영 퍼스트비뇨기과 원장
역설적으로 말하면 영조가 장수했기 때문에 오래도록 성생활을 즐겼다고 볼 수 있는데, 성과 건강의 상관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성생활은 아드레날린 호르몬 분비를 증가시켜 호흡과 맥박을 빠르게 하여 심장과 폐를 좋게 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춰준다. 또한 전립샘(전립선)을 보호하며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고, 성욕을 촉진하는 옥시토신 농도를 증가시켜 부부관계를 보다 더 원활하게 만들어준다.

건강과 장수를 원한다면 지속적으로 부부생활을 갖는 것이 바람직한데, 정력을 유지하는 비법은 체력에 맞는 꾸준한 운동과 바른 식습관,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댄디즘’을 실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외모와 복장에 신경을 써 멋을 부리고 젊은이들과 어울리면 삶의 활력도 생기고 정신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

김재영 퍼스트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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