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를 들고]102세 할머니 직장암 수술… 복강경 의술+환자 정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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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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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사투후 모두 웃음꽃

김준기 서울성모병원 최소침습 및 로봇수술센터장
김준기 서울성모병원 최소침습 및 로봇수술센터장
제주도에 사는 102세 문모 할머니. 지난해 12월 문 할머니의 직장암 수술을 성공한 뒤부터 90세 이상의 초고령 환자나 가족에게서 많은 질문을 받는다. 대부분 “102세 할머니도 살리셨으니까 80∼90세 노인을 살리는 일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네요”라고 묻는다.

이럴 때는 말문이 막힌다. 문 할머니를 수술하기 전까지는 환자가 70세만 넘어도 “연세 때문에 수술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문 할머니의 수술을 성공한 뒤부터 초고령층 환자의 치료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문 할머니를 만날 당시에도 내심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고령 환자는 심폐 기능을 포함한 몸 전체의 기능이 떨어진다. 큰 수술을 하면 회복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문 할머니는 100세를 넘었다고 느끼기 힘들 정도로 정정했다. 병을 치료하겠다는 의지도 아주 강했다. 대장내시경 검사 결과 직장암과 구불 결장암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다른 장기는 건강해 보였다. 고혈압과 가벼운 심부전증으로 약을 복용한다는 점 외에는 모두 정상이었다.

수술 전날 병실에서 할머니의 상태를 돌봤다. 할머니가 수술을 대하는 자세도 남달랐다. 침상에서 기도문을 펼쳐 놓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이 환자의 수술 후 경과가 좋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의학적 지식보다는 환자의 늠름한 태도에서 그런 판단을 했던 것 같다.

몇 차례 고비가 있었다. 수술은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50년 전 앓았던 충수돌기염이 악화됐다. 또 수술을 받았던 부위에 소장과 결장의 유착이 심해 수술이 6시간 넘게 걸렸다. 보통 직장암 수술에 걸리는 시간보다 3배가 넘었다. 50년 전 제주도에서 충수돌기염에 이어 복막염을 앓고도 지금껏 생존한 사실 자체가 기적 같았다.

배에 조그만 구멍을 내고 암세포를 떼어내는 복강경 수술로 시작했다. 장기 유착이 심해 수술 도중 개복 수술로 바꿀지를 검토할 정도였다. 문 할머니가 개복 수술을 받았다면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거나 건강 회복 속도가 매우 느렸을 것이다.

결국 수술 받을 당시의 현대 의술의 발전, 수술 직전 암 환자답지 않은 건강 상태가 문 할머니를 살렸다고 볼 수 있다. 유능한 마취과 전문의의 도움이 없었다면, 또 복강경으로 수술을 진행하지 않았다면 매우 위험한 지경에 빠질 수 있었다.

복강경 수술은 1994년까지 국내 외과에서 냉대를 받았지만 한국의 의술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수술 후 통증 감소, 장운동의 빠른 회복, 호흡 기능 유지, 합병증 감소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앞으로는 생물학적 나이가 많다고 수술이 어렵거나 경과가 나쁠 것이라고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게 됐다. 수술 직전 환자가 신체적으로 얼마나 건강한지가 수술을 결정하거나 결과를 판단하는 데 훨씬 더 중요해졌다. 기대 수명이 늘어가는 시대에 수술 가부를 좌우할 요소는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건강나이가 될 것이다.

김준기 서울성모병원 최소침습 및 로봇수술센터장
#직장암#복강경 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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