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세이/이은희]“개발” 외치며 자연 파헤치는 인간들 자기 무덤 파는 짓인 줄 아나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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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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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평화롭던 시골 마을에 갑자기 비극이 닥친다. 알 수 없는 괴질(怪疾)이 마을을 덮쳤기 때문이다. 대수롭지 않은 기침으로 시작되는 이 괴질은 곧 고열과 근육통을 일으키고 한숨 돌릴 틈도 없이 호흡 부전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보고를 받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즉시 마을 주민을 격리시키고 괴질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기동의학팀을 급파한다. 드라마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에서 다뤄진 이야기다.

드라마 속 기동의학팀은 역학조사를 통해 최근에 마을에서 지역 재개발을 위한 토목공사가 있었고 그 이후 질병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토목공사로 땅이 파헤쳐지면서 오래전 땅속에 깊이 묻혀 있던 바이러스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바이러스의 정체. 실마리는 마을의 최연장자인 할아버지에게서 발견된다. 젊은 사람도 픽픽 쓰러지는 마을에서 가장 나이 든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건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아이러니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이전에 이 질병을 앓아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88세이던 그는 2세 때인 1918년에 스페인 독감에 걸렸다가 살아난 병력이 있었다.

이 드라마는 여러모로 지난해 발생한 신종인플루엔자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신종플루 바이러스의 출몰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드라마 속에서는 스페인 독감의 재유행에 대한 책임을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 탓으로 돌린다. 재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사람들은 오래된 묘지를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우연한 지질학적 특성 탓에 썩지 않고 보존돼 있던 시신이 드러나면서 시신에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깨어나 마을을 덮쳤다는 것이다.

마치 이는 오래전 봉인되었던 악마가 탐욕스러운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깨어나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끈다는 전형적인 구조를 닮았다. 새로울 것 없는 클리셰(Cliche·프랑스어로 판에 박은 듯한 문구나 진부한 표현을 가리키는 용어)이긴 하나 한편으로 울림이 남는다.

근대 이후 인류는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자연을 파헤친 자리에 인공 구조물을 우겨 넣고는 스스로 “더욱 편리해졌고 말끔하게 정리됐다”며 우쭐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편리한’ 개발로 생태계는 무너졌다.

이 드라마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는 어쩌면 무너지고 오염된 자연이 몸살을 앓는다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그보다 더 큰 역(疫)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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