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키즈]<6·끝>휴대전화가 만능 키

  • 입력 2005년 2월 11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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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를 단순히 전화로만 생각하면 당신은 기성세대다.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이동통신회사가 연령별로 휴대전화를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0대 이상은 음성통화가 100%에 가깝고, 30대는 문자메시지가 음성전화의 보조 역할을 한다. 반면 20대는 문자메시지 사용 빈도가 70%로 음성(30%)을 압도한다. 10대는 주로 어떤 용도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지 규정 짓기 어렵다. 워낙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윤영민 교수는 “휴대전화는 단순한 상품을 넘어서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 나가고 있다”며 “미래에 인간과 휴대전화와의 관계를 전망하려면 한국의 디지털 키즈의 문화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는 만능 키=겨울방학 전인 작년 12월 중순. 경기 포천시 일동종합고 1년 김모 군(17)은 오전 6시 반 휴대전화 알람에 맞춰 기상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1교시에는 졸고 있는 친구를 폰카로 몰래 찍고 쉬는 시간에는 휴대전화 MP3로 노래를 들었다.

점심시간에는 휴대전화로 모바일 만화 ‘아즈망가 대왕’을 봤다. 또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해 옥션 경매 상황을 확인한 뒤 그동안 모은 용돈으로 10만 원짜리 ‘모형조립용 도료분무기’를 구입했다. 오후 쉬는 시간에는 휴대전화 적외선 수신기능을 이용해 친구들에게 직접 만든 벨소리와 배경화면을 전달했다.


오후 11시 학원에 갔다 와 휴대전화를 분해해서 먼지를 닦아냈다. 다음 날 오전 1시 휴대전화 MP3로 노래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KTF 커뮤니케이션팀 이수호 대리는 “고객조사차 만난 한 고교생의 등에 뭔가 묻은 것을 보고 말해주자 학생이 바로 카메라폰으로 등을 찍어 확인했다”며 “휴대전화가 10대의 의식 속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 실감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는 나를 드러내는 상징=기성세대에게 자동차, 집, 옷은 사회적 계층과 개성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디지털 키즈에게는 휴대전화가 그렇다.

광주 금호고 1년 박모 군(17)은 중1 때부터 지금까지 4년간 20여 개의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중3 때는 3개나 가지고 다녔다. 그가 휴대전화를 바꾸는 이유는 주로 디자인. 멋있는 디자인의 휴대전화를 보거나 친구들이 내 휴대전화와 똑같은 걸 가지고 다니면 참을 수가 없다.

새 휴대전화를 사기 위해 박 군은 용돈을 모으거나 가끔 부모님께 거짓말도 하고 갈비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다.

휴대전화를 바꾸지 못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튜닝(개조)’을 한다. 휴대전화 키보드마다 다른 빛이 나오도록 발광 다이오드 교체, 스프레이로 색깔 칠하기 등 튜닝의 종류만 10여 가지가 넘는다.

▽혼자 노는 아이들=휴대전화는 학교 풍경까지 바꿨다. 지난달 31일 서울 아현중 3학년 교실. 점심시간인데도 운동장이나 복도에 나와 뛰어 노는 학생이 별로 없다.

한 교실에 들어서니 10여 명이 두 패로 나뉘어 두 학생이 새로 다운받은 모바일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모여서 수다를 떠는 학생 중 몇 명은 한 손으로 문자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낸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휴대전화를 쓴 김모 군(15)은 “잠잘 때 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다”며 “하루에 문자메시지를 1200개를 보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학교 풍경이 크게 바뀐 것 같다”는 질문에 한 교사는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 안에서도 학생들이 모바일 게임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느라 버스 안이 조용할 정도로 혼자 노는 문화가 일반화돼 있다”고 전했다.

적잖은 학생들이 휴대전화 중독 증세를 보이면서 각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 간에 휴대전화를 놓고 논쟁도 끊이질 않는다.

윤 교수는 “휴대전화가 신체의 일부가 돼 버린 학생에게서 휴대전화를 일방적으로 뺏어버리면 정서불안 등 금단증세나 반발심을 심어줄 수 있다”며 “자녀의 휴대전화 요금 명세서를 자세히 살펴본 뒤 사용빈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요금한도와 사용시간을 알아서 정하도록 유도하고 스스로 휴대전화 중독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다양한 놀이…또 하나의 딴 세상▼

‘교과서놀이’ ‘시체놀이’ ‘페이퍼페이스(paper-face)놀이’ ‘다이모놀이’ ‘문답놀이’ ‘버스환승놀이’ ‘공감놀이’….

요즘 디지털 키즈가 즐기는 각종 놀이들이다. 이름만 들으면 어떻게 노는지 알 수 없는 게 대부분이고 종류도 수백 가지다. 소꿉놀이나 공기놀이, 술래잡기 정도만 했던 기성세대들에게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또 하나의 딴 세상이다.

▽내 방식대로 논다=광고기획사인 화이트는 신세대 놀이 42가지를 정리해 ‘놀이대백과사전’을 만들었다. 놀이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10대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라는 판단 때문. 이 회사 김보연 씨는 “하루에도 수십 종류의 새로운 놀이가 인터넷에 소개된다”며 “10대의 놀이문화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노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과 룰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또 10대의 놀이는 온라인과 연결된다. 인터넷과 디지털카메라, 포토숍 프로그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이모놀이’는 다이모(휴대용 라벨 제조기)로 메시지를 찍어 시내 곳곳에 붙인 뒤 인터넷에 힌트를 올리면 다른 사람이 이를 찾아내는 일종의 ‘보물찾기’. 찾아낸 라벨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려야 찾았다고 인정받는다.

기존 놀이가 인터넷상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경우도 많다. 도덕 교과서를 ‘돈떡’ 교과서로 바꾸는 등 표지에 장난을 치는 ‘교과서놀이’나 연예인의 패션을 따라하는 ‘연예인 놀이’ 등이 그것.

교사 흉보기도 온라인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담탱(담임교사)안티놀이’라는 이름으로 화장실 벽에서 봄직한 욕설을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다.

온라인에서만 진행되는 놀이도 있다. ‘문답놀이’는 온라인에 재미있는 질문과 답변을 올리는 것. 예를 들어 ‘다섯 글자로 묻고 답하기’라는 규칙을 붙여 ‘잠은몇시간=평균구시간’, ‘키는몇센티=백팔십오요’하는 식으로 올린다.

▽“모르는 사람과 놀아도 좋아”=디지털 키즈는 익명의 누리꾼(네티즌)들과 함께 논다. 집 앞 공터에서 친한 친구 몇 명이 똘똘 뭉쳐야 놀이가 진행됐던 과거와 다르다.

‘공감놀이’를 하는 박모 군(18·서울 숭실고 2년)은 “불특정 다수에게 내 생각을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점이 재미있다”며 ‘친분’이 아니라 ‘교감’을 강조했다. ‘문답놀이’를 즐기는 고모 양(13·중앙대부속초등 6년)도 “진짜 친구들은 밖에서 만날 시간도 별로 없고 만나도 별로 할 게 없다”고 말했다.

사이버문화연구소 김양은 소장은 “청소년들은 놀 시간도, 장소도 없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접속하지 않아도 자신을 알리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인터넷 놀이문화가 발달했다”고 분석했다.

▽놀이의 기록이 다시 놀이의 대상이 된다=술래잡기가 끝나면 그 과정은 사라진다. 그러나 디지털 키즈의 놀이는 기록으로 남아 그 자체가 디지털 콘텐츠가 된다. 이 결과물을 가지고 다시 다른 이들이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간다.

최근 인터넷에서 인기를 끄는 ‘학교대사전’은 성인들에게도 회자되며 조회 수가 15만 건을 넘어섰다. 이 사전은 남자 고등학생 두 명이 일주일간 작업해 만들어냈다. ‘급식’을 ‘싸고 위험한 음식’으로, ‘교문’을 ‘불순분자를 걸러내는 공간’이라고 새롭게 해석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각종 놀이들은 인터넷 카페와 클럽을 통해 빠른 속도로 확산되며 새로운 놀이꾼을 끌어들인다.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 김미윤 연구원은 “신세대의 놀이문화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특성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은 10대들의 문화적 욕구가 결합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특별취재팀(경제부)▼

이병기 기자(팀장) eye@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이번 시리즈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란우(서울대 사회학과 2학년), 안병찬(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안현정(이화여대 국제학부 3학년), 우정한(고려대 경제학과 3학년), 이상엽(연세대 의과대학 본과 4학년), 황성규(서울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황선영 씨(이화여대 국제학부 3학년)가 참여했습니다.

○그동안 연재된 시리즈

▼시리즈 1회(2월 2일자)

-오픈(Open)문화의 물결

-문자의 진화

▼시리즈 2회(2월 3일자)

-무(無)의미의 의미화

-나이는 10대, 경험은 30대

▼시리즈 3회(2월 5일자)

-스타는 ‘☆’이 아니다

-게임은 제2의 학교

▼시리즈 4회(2월 7일자)

-교실의 권력이동

-주먹보다 무서운 사이버 왕따

▼시리즈 5회(2월 11일자)

-이미지가 문자보다 우월하다

-‘노웨어(Know-Where)족’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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