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해양硏 김동성박사, 1만1000m 해저를 가다

  • 입력 2003년 1월 7일 17시 46분


김동성 박사
김동성 박사
《1만700m, 1만800m, 1만900m….

무인 잠수정이 천천히 해저로 내려갔다. 마침내 회색 고운 모래가 깔린 듯한 바닥이 보였다. 1만1000m 깊이의 마리아나 해구 밑바닥에 도달한 것이다. 잠수정이 움직이자 갑자기 옆으로 하얀 물체가 달아났다. 해파리처럼 생긴 해삼이었다. 조그만 옆새우들이 다리를 바삐 움직이며 멀리 도망쳤다. 바닥에는 생물이 지나간 흔적으로 보이는 두 개의 줄이 어디론가 길게 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 마리아나 해구의 심해에 한국 과학자가 처음으로 다녀왔다. 한국해양연구원의 김동성 박사는 지난해 10월 일본 해양탐사선 ‘가이레이호’를 타고 일본 및 미국 연구팀과 함께 마리아나 해구의 심해저를 조사하고 귀국했다.》

마리아나 해구는 1960년 프랑스의 심해 잠수정 트리에스테 2호가 처음으로 잠수에 성공한 곳으로 지구에서 가장 깊은 신비의 심해저다. 이곳까지 내려갈 수 있는 잠수정은 지금은 세계에서 단 하나, 이번 탐사에 사용한 일본의 심해 무인 잠수정 ‘가이코’뿐이다.

바다 속은 10m를 내려갈 때마다 1기압이 증가한다. 마리아나 해구의 밑바닥은 무려 1100 기압이다. 무려 110t의 물통이 손바닥 위를 누르는 압력이다. 생물이 살기에는 지옥 같은 환경이지만, 이번 탐사 결과 이곳에도 여러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연구팀이 이곳에서 눈으로 관찰한 생물은 크게 3가지 종류였다. 5㎝ 크기의 해삼, 2∼4㎝크기의 옆새우, 비슷한 크기의 갯지렁이류이다. 해삼은 겉으로는 마치 투명한 해파리처럼 생겼고 옆새우나 갯지렁이도 얕은 바다에서 보는 것과는 모양이 많이 달랐다. 이곳에서 발견된 생물은 대부분 지금까지 한번도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종류의 생물이다.

심해의 극한 환경에서 이 생물들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정확한 답은 아직 모른다. 심해 수온은 대개 섭씨 1∼2도로 매우 낮지만 심해 생물은 오히려 수온이 올라가면 바로 죽는다. 이들은 높은 수압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수백만, 수천만년, 어쩌면 수억년 동안 이곳에서 살면서 높은 수압에 적응하도록 진화된 덕분이다. 김동성 박사는 “심해 생물은 신체의 내부 압력을 수압에 맞춰 변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며 “어떤 심해 생물은 해저에서 수백m 사이를 왔다갔다하는데 내부 압력을 계속 바꾸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해저에는 생각보다 먹이가 풍부한 편이다. 심해에 늘 내리는 ‘바다의 눈’ 덕분이다. 바다의 눈은 바다 생물의 시체나 배설물의 분해된 조각들이 떨어지는 것이다. 모래처럼 보이는 심해저 바닥도 사실은 ‘바다의 눈’이 두껍게 깔려 있는 것이다.

가이코 잠수정이 이곳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95년 1만1000m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처음으로 테스트를 했다. 98, 99년 본격적인 탐사를 했는데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했고 수집한 생물도 배 위로 올리기가 무섭게 부서졌다. 다양한 생물을 채집하고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은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잠수정은 2시간에 걸쳐 1만800m까지 탐사선에서 쇠줄에 매달려 내려간다. 이어 작은 잠수정이 다시 줄에 매달려 1시간 동안 1만1000m의 해저까지 내려간다. 잠수정에는 로봇팔이 달려 있어 그물이나 먹이통으로 생물과 흙을 채취한다. 잠수정은 심해에 도달해 기껏 1시간 남짓 활동할 수 있다. 가이코 잠수정은 이번 탐사에 7, 8차례 마리아나 해구에 잠수했다.

연구팀은 이번 탐사에서 기대했던 물고기는 보지 못했다. 1960년 잠수함을 타고 마리아나 해구를 내려간 자크 피카르는 30㎝ 크기의 편평한 물고기를 봤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사진 증거가 없다. 연구팀은 해저에서 가져온 흙 속에 1㎝ 이하의 심해 생물이 다수 발견돼 심해 생태계의 비밀을 풀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마침 이 분야가 김 박사의 전공이다.

김 박사는 “생물의 묘지일 것 같은 심해 밑바닥에 눈에 보이는 해저 생물만 해도 10평 넓이 안에 10마리 이상 살고 있었다”며 “심해 연구는 생물의 신비를 푸는 것은 물론 인류에게 크게 도움이 될 생물을 발견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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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생물 처음 본 순간 숨이 멎는 듯"▼

“1만1000m 해저에 사는 생물을 처음 보았을 때 가슴이 벅차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곳곳에 생물의 흔적이 있었지만 잠수정의 한계로 추적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아쉬웠다.”

김동성 박사는 잠수정이 마리아나 해구의 해저에 도달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흥분된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일본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며 맺은 인연이 이어져 이번에 일본 연구팀과 함께 마리아나 해구 탐사를 떠났다.

김 박사는 “이번 탐사에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1㎝ 이하의 심해 생물을 채집하는 등 수심 1만m 깊이에 사는 심해 생물에 대해 비교적 다양한 조사가 이뤄졌다”며 “앞으로 심해의 생태계와 심해 생물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선진국에서는 최근 심해 생물에서 유용한 물질을 찾는 연구가 활발하다.

김 박사는 3월에 일본 오가사하라 해구(수심 약 9000m) 공동 탐사도 추진하고 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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