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아빠' 휘파람새는 용감하다

  • 입력 2002년 11월 3일 17시 22분


휘파람새는 울음소리로 포식자를 자신에게 유인해 아내와 자식을 보호한다. - 동아일보 자료사진
휘파람새는 울음소리로 포식자를 자신에게 유인해 아내와 자식을 보호한다. - 동아일보 자료사진
휘파람새는 숲 속에 숨어 맑은 노랫가락으로만 그 존재를 알리는 대표적 ‘겁쟁이새’다. 하지만 이 겁쟁이가 무서운 포식자를 유인하는 ‘이타주의적 행동’으로 새끼와 아내를 보호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휘파람새는 여름철에 한반도 등에서 번식을 하고 겨울철에는 남부 중국까지 내려가 겨울을 보내는 참새목 딱새과의 철새. 휘파람새의 노래는 너무 아름다워 요즘 휴대폰과 출입문의 차임벨 소리로 인기다.

지금까지 알려진 휘파람새의 노랫 가락은 두 가지. 암컷을 유인하는 알파형 노래와 자기 영역에 낯선 수컷이 침입했을 때 부르는 베타형 노래가 있다.

한국교원대 박시룡 교수(동물행동학)와 박사과정 정석환씨는 휘파람새가 두 가지 외에 또 다른 노래를 한다는 것을 밝혀내고 그 정체를 10월 24∼26일 한국생물과학협회 학술대회에서 논문으로 공개했다.

박새나 멧새처럼 노래하는 새는 대부분 포식자가 접근하면 경계음으로 주위의 동료들에게 적의 출현을 알리고 자신도 도망을 친다. 휘파람새도 매, 때까치 같은 포식자나 사람이 가까이 오면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찌르르르르삐죽 삐죽 삐죽”하는 큰 경계음을 낸다.

그런데 휘파람새는 경계음을 내면서 이상한 행동을 한다. 피하기는커녕 둥지에서 나무 아래 덤불로 내려와 이리저리 나뭇가지를 옮겨다니며 포식자가 사라질 때까지 큰 울음소리를 내며 유인을 하는 것.

연구팀은 휘파람새의 경계음을 녹음해 휘파람새 둥지 근처에서 들려주고 새끼를 키우는 암컷과 이웃 수컷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배우자와 이웃 수컷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휘파람새의 경계음이 동료에게 도망을 가라고 알리는 신호가 아니란 것을 말해준다. 또한 휘파람새는 자신의 둥지와 가까운 곳에서는 경계음을 내지 않았다.

박 교수는 “꼬마물떼새는 포식자가 가까이 오면 날개를 다친 것처럼 병신 흉내를 내면서 포식자가 둥지에서 멀어질 때까지 포식자를 유인한다”며 “소리가 유난히 커 적에게 잘 노출되는 휘파람새도 이런 이타주의적 행동이 진화해 자손을 보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휘파람새의 소리는 www.dongascience.com에서 들을 수 있다.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