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의 디지털 그늘]디지털 미디어도 쓰기나름

  • 입력 2000년 11월 19일 18시 09분


우리는 디지털 미디어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가를 묻기보다는, 디지털 미디어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나 미디어에 내재하는 필연적 사용법이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특정한 기술이 처음 개발됐을 때, 그것이 오늘날처럼 쓰이리라는 예측과 기대로 발명된 것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19세기에 전깃불이 발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많은 사람들은 환한 전구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믿었다. 구름에 서치라이트 등을 쏘아 전쟁이나 날씨를 알리거나, 건물 벽에 메시지를 비추거나 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러나 오늘날 전구는 주로 조명기구로 사용되고 있다. 라디오 방송이 생겨나기 전에 전화는 연주회 설교 연설 등을 청중에게 들려주는 수단으로 사용됐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전적으로 개인간의 통신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텔레비전만 하더라도 처음 발명됐을 당시에는 각 가정에 모두 한 대씩 비치되는 가전제품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최초의 전자 컴퓨터인 에니악(ENIAC) 역시 처음에는 대포알 탄도 계산을 위한 일종의 전쟁용 무기로 개발됐지만 나중에는 데이터베이스로 주로 사용되다가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점차 그 사용법과 개념이 바뀌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이나 미디어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 즉 우리가 원하는 가치는 무엇이며, 그러한 것들을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항상 의문을 제기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추구해야 할 가치는 우선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평등하며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민주주의 사회라 믿는다. 과연 어떻게 해야 상호작용과 디지털화로 특징지어지는 디지털 미디어가 이러한 보편적 가치에 봉사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만 한다.

우선 정보화가 진척됨에 따라 정보 부자와 정보 빈자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이른바 디지털 디바이드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방치할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될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돗물이나 전기처럼 국민 모두가 누구나 싼값에 네트워크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첫 단계로 지역공동체 네트워크의 건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동사무소나 공공도서관 등의 기초 공공기관은 여러 정보 서비스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해 주는 창구와 교육 자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각 지역의 공공 기관은 네트워크에 접속돼 있는 컴퓨터 단말기를 여러 대 마련해 놓고 원하는 지역 주민에게 사용자 구좌를 부여해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하며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지역 주민들을 컴맹과 넷맹으로부터 탈출시켜야 한다. 이러한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주민들은 자기 지역과 나라의 여러 문제들을 언제든지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밑으로부터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이 될 것이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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