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의 디지털 그늘]"왜 주민등록번호에 묶여 사나"

  • 입력 2000년 9월 21일 18시 59분


전국민에게 강제로 부여되는 주민등록번호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반드시 폐기되어야 할 대단히 위험한 개인식별번호 제도이다. 이는 부여대상자 중에 중복되는 것이 없으며 (유일독자성), 일생동안 변하지 않고 (영구성), 개인을 특정하는 데 사용(전속성)되기에 데이터베일런스, 즉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한 감시체제에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

데이터베일런스는 국가기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용카드회사, 이동통신회사, 병원, 기업, 학교 등 여러 사적(私的) 기관들 역시 의도했든 안 했든 여러 종류의 방대한 개인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축적, 보관, 관리하고 있다.

◇감시체제에 악용될 우려◇

주민등록번호는 이러한 모든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된 공통분모로서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한 개인에 대한 자료를 한데 묶어 내는 데이터베이스 머징 (merging)의 열쇠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국민고유번호를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예컨대 독일은 주거등록제도와 국가신분증제도를 두고 있지만 각 제도는 서로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으며 국민에 대한 고유식별번호도 두고 있지 않다. 프랑스의 경우 1979년에 컴퓨터로 읽을 수 있는 형태의 개인신분확인카드 (이름과 출생일만 포함되고 개인고유번호는 사용하지 않음)의 발급을 계획하였으나 그마저 시민 단체의 엄청난 반발에 부닥쳐 무산되고 말았다. 일본 역시 신분등록제도로 호적제도를, 주거등록제도로 주민기본대장제를 두고 있으나, 국민에 대한 개인식별번호제와 국가신분증제도는 채택하지 않고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 이른바 영미법계 국가 대부분은 주거등록제도는 물론이고 국가신분증제도와 개인식별번호조차 두고 있지 않다.

◇선진국에선 대부분 금지◇

특히 독일의 신분증명법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선 신분증을 발급할 때 부여하는 일련번호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신분‘증’에 부여되는 것이어서, 새 신분증을 발급할 때마다 새 번호가 부여된다. 또 일련번호에도 생년월일이나 성별 등의 인적 사항 등을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을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또 공적 기관은 물론이고 사적 기관도 일련번호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인적 사항을 추출하는 것(프로파일링)이나 여러 데이터베이스 자료의 결부(머징)를 위해서 사용할 수 없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자주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했고 또 그 요구에 응해왔다. 그러나 이제 주민등록번호 하나면 수 많은 데이터베이스에 담겨있는 당신의 신상과 행적에 관한 모든 정보가 한데 묶여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주민등록번호가 폐지되기 전까지는 주민등록번호를 함부로 요구하지도 말고 알려주지도 말아야 한다.

◇허위번호 사용 징역이라니◇

특별한 이유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 당하는 경우에는 허위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정자치부는 가짜 주민등록번호를 생성하거나 행사(주민등록번호의 ‘행사’란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주민번호가 무슨 권리란 말인가?)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주민등록법개정안을 지난 9월 1일 마련했다. 만약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우리는 디지털 데이터베일런스의 어두운 그늘을 한동안 벗어나기 힘들게 될 것이다.

김주환(연세대신문방송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