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의 메디컬&로]異形혈액 섞으면 혈액형 바뀔수도

  • 입력 2001년 1월 9일 19시 15분


하진우씨(25)는 중앙선을 넘어 교통사고를 내 다리와 배가 크게 다쳐 응급실에 후송됐다. 병원측은 혈액형을 알기 위해 피를 뽑아 임상병리실로 보냈고 잠시 후 수혈을 시작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응급실로 달려온 가족들이 혈액봉지를 보니 ‘O’형이 아닌 ‘A’형 피가 하씨에게 들어가고 있었다.

놀란 가족들은 간호사에게 “진우의 혈액형은 O형인데 왜 A형 피가 들어가고 있느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혈액검사지 상단에 빨간 도장으로 ‘O형’, 혈액봉지에 ‘A형’이 찍혀있는 것을 확인 뒤 즉시 수혈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다시 우씨의 피를 뽑았다.

얼마 후 간호사는 “좀 전 채혈한 피를 검사해보니 ‘A형’이 틀림없으며 임상병리사가 착각해 ‘O형’으로 도장을 잘못 찍었다”면서 먼저 찍혀 있던 O형을 두 줄로 지우고 그 옆에 A형을 찍은 혈액검사지를 보여줬다.

간호사는 “환자의 생명이 위독하다”면서 A형 수혈을 반대하는 가족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하씨는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과다출혈사로 사망했다.

가족들은 “혈액형이 다른 피가 들어가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병원측은 “첫 번째 검사에서 도장이 잘못 찍혔고 2차 검사에서는 분명 A형으로 나왔다. 과다 출혈은 손 쓸 수 없는 복부동맥이 터졌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법원은 “하씨의 부모 형제의 혈액형, 초등학교와 육군훈련소의 혈액검사기록, 사체에서 채취한 머리카락과 사망 당시 입고 있던 청바지 혈흔의 검사결과 모두 혈액형이 O형이라는 점만으로는 이형(異形)혈액으로 인한 쇼크사로 볼 수 없다”며 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하씨 가족의 주장은 맞다. 그러나 민사재판은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재판하지 못한다.는 ‘변론주의’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하씨 가족은 병원의 실수에 대해 정확한 주장을 폈어야 한다.

이들은 병원측이 O형인 하씨에게 A형을 수혈한 뒤 2차 검사를 한 것이 잘못됐다고 주장하지 못했다. O형 사람에게 A형이 수혈되면 혈액검사에서 A형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의학 지식이 부족한 환자들은 이처럼 ‘진실’을 파헤치는 방법을 몰라 억울하게 주저앉을 때가 많다. www.medcon.co.kr

신현호(의료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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