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의 메디컬&로]간신히 연명하는 불치환자의 '죽을 권리'는

  • 입력 2000년 12월 19일 19시 20분


대기업 영업팀장 김창기씨(45)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은 마흔살이 됐을 때였다. 어느 날 손에 힘이 없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벌써 내 나이에 이러나”라며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시작했으나 소용 없었다. 팔과 어깨까지 힘이 빠지자 이상하다 싶어 병원을 찾아 검사한 결과는 ‘근위축성 축색경화증(ALS)’.

“이 병은 근육이 위축되면서 힘이 빠지고 결국 온몸이 마비돼 5년내 사망합니다.희귀병으로 치료법조차 제대로 연구되지 않아 암보다도 고치기 어려운 병입니다.죽음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의사 말대로 다리에 마비가 오고 입이 굳어지면서 씹는 것이 어려워졌다. 스스로 숨조차 쉴 수 없게 되어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기를 3년. 호스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고 배설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침대에만 누워있어 온몸에 욕창까지 생겼다.

그러나 의식은 아무 이상없어 정상적으로 듣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더 고통스러웠다. 김씨는 결국 부인에게 “차라리 인공호흡기를 떼고 죽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냐? 당신 없이는 못산다”며 펄쩍 뛰던 부인도 하루하루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남편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겠다며 동의하고 말았다.

존엄하게 죽게 해 달라는 환자와 보호자의 요구를 받은 병원은 병원윤리위원회를 열어 환자의 명백한 의사에 따라 ‘자연스럽게 죽을 권리’를 인정하고 퇴원을 허락했다. 김씨는 집에 도착한 후 인공호흡기가 제거되고 고통스러운 삶을 마감했다.

물론 생명은 소중하고 존엄하다. 어떤 이유든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는 용납되선 안된다. 하지만 비참한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선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생명을 무조건 유지하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현호(의료전문변호사)www.med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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