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의 메디칼&로]약 오용 발목절단 의사에 배상판결

  • 입력 2000년 10월 17일 18시 45분


강인하양(여·3)은 조금만 뛰어도 얼굴빛이 파래지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다가 경련을 일으키는 일이 잦아졌다.

달동네 사람들이 “병원에 한 번 데리고 가보라”고 걱정하지만 막노동하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인하 아빠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겨우 돈을 마련하여 병원을 찾아갔더니 “선천적으로 심장에 구멍이 뚫려져 있는 ‘활로씨 사증후군’이어서 빨리 수술을 받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 이 소식이 신문에 보도돼 각계 성금이 모아져 수술을 하게 되었다.

심장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수술 직후 혈압과 맥박이 심하게 떨어졌다. 의사들은 혈압상승제 도파민과 에피네프린을 투여해 일단 위기를 넘겼다. 그런데 인하의 손과 발의 색깔이 차츰 검게 변하더니 썩기 시작했다. 손을 주무르고 뜨거운 물주머니를 대주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해 손은 회복되었지만 결국 양쪽 발목은 절단해야 했다.

인하 아빠는 심장수술을 했는데 왜 발목을 잘라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잘려나간 발목을 보면서도 자꾸 발가락이 가렵다고 떼를 쓰는 딸을 바라보는 것도 마음 아프지만 “차라리 수술하지 말고 살만큼 살다가 그냥 죽게 놔두는 것이 날 뻔했다”고 눈물짖는 아내의 모습도 안쓰럽다.

법정에서 의사들은 “이 약들은 강력한 혈관수축작용이 있어 계속 사용할 경우 손발이 썩을 수 있는 부작용이 있는 것을 알지만 약을 끊으면 심장이 멎으므로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고 변명했다.

법원은 “도파민의 투약이 불가피해도 에피네프린과 섞어 사용할 경우 근육이 썩는 부작용이 훨씬 더 나타나게 된다는 점을 무시한 잘못과 이런 부작용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인하 부모들에게 2,000만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약은 제때 적절하게 쓰면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독보다 더 무섭다. 응급상황에서 어느 약을 얼마나 사용할 것인가는 의사의 재량이다. 하지만 의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섞어 사용해서는 안될 약을 구별하고 환자의 상태를 수시로 관찰, 양을 조절해야 한다. 이는 의사에게 피를 말리는 일이지만 환자의 생명을 좌우하는 일이다. 의사가 존경받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www.medcon.co.kr

신현호(의료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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