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디지털]레비스트로스의 '문화의 전지구화와 다원성'

  • 입력 2000년 3월 6일 00시 52분


코멘트
▽질문=지금 세계는 디지털혁명과 함께 문화의 전지구화와 그로 인한 다원성의 상실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입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문명충돌론'과 그에 대한 반론도 대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상충되는 듯 하면서 서로 뒤엉킨 문화 담론들에 대해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 레비-스트로스〓제가 보기에 지금 이야기되는 문화의 전지구화는 특별히 새로운 것이라기보다 인간문명의 태동기부터 항상 관찰돼 온 문화 역동성의 한 측면입니다. 우리는 석기시대의 기술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자생적으로 출현하거나 전파됐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뒤 발생한 청동기와 철기의 기술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후대로 올수록 각지방에서 기술이 자생적으로 출현하기보다 전파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공유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사회체계나 생활양식도 그에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컴퓨터와 전자정보매체로 인한 변화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새로 진행된다는 문화의 전지구화나 다원성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관심을 가져온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범주, 즉 보다 ‘표면적인 차원의 문화’에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문화적 전파와 공유가 가능한 것은 보다 깊숙한 지층에 자리잡은 인류의 문화적 기본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20세기 내내 관심을 가져온 것도 이렇게 ‘인간의 심층적이고 보편적인 문화시스템’이 갖는 법칙성이랄까, 기본적 성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질문=하지만 문화요소가 공유되고 전파되는 속도와 영향력 면에서 오늘날 정보혁명은 이전과 크게 다릅니다. 아무리 구조주의 문화이론을 전제한다 해도 그같은 전파속도와 영향력으로 인해 인간의 인식에 질적인 변화와 발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각 지방적 문화가 소멸하고 세칭 세계문화(World Culture)로 통합돼가는 현상은 당신도 ‘슬픈 열대’나 ‘야생의 사고’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 레비-스트로스〓이제는 내용 못지 않게 전파속도 자체가 중요한 개념이 됐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얘기한 맥락 속에서 ‘문화의 전지구화’는 인간문화의 기저를 구축해 온 구조차원의 변화나 통합이라기보다 어떤 표층적 차원의 문화요소가 새로운 기술을 통해 공유되고 전파되는 ‘속도’에서 변화하는 것이라고 설명돼야 합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변화’에 치중하다보면 ‘변화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보다 심도깊은 관찰과 질문이 도외시될 위험이 있다는 말입니다. 정신구조의 복잡성이 늘어난다는 것과 인식의 진보를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문화의 심층구조를 관찰하지 않으면 실제 무엇이 어떤 차원에서 변화하는지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힘듭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간문화의 기본적인 작동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방금 이야기한 지방적 문화와 세계문화에 대해 예를 들어볼까요.

문화의 전지구화는 석기시대 이래 인류가 하나의 종(種)으로서 하나의 기본 문화언어구조를 가진 이상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정보화와 매체의 발달로 전지구의 ‘표면적 문화’는 과연 하나로 통합되어 갈까요? 인류사회를 특징지어 온 각 문명시대의 중심기술들은 공유되는 동시에 적응과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이런저런 모양으로 자기 정체성의 단위와 특성을 만들면서 지방화를 낳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화하는 것입니까? 각 인간집단이 관계망을 맺는 데 활용하는 외연적 요소들, 관계망의 형태들, 정체성 범주들, 매개체들이 변할 것입니다.

그것들이 모든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예를 들면 공동체 또는 연계망은 언제나 존재할지라도 (그래야 ‘사회’가 존재하니까요) 공동체와 연계망을 구성하는데 동원되는 매개단위와 개념들은 계속 변해 왔고 앞으로도 변해 갈 것이며, 그 다양성 또한 지속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컨대 보다 심층적인 중간개념인 ‘혈연’ 개념은 앞으로도 오래 생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질문=바로 그 부분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인간복제가 이뤄지면 혈연의 개념도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때 인간과 디지털적 복합구성물인 사이보그, 또는 인간과 다른 생물체 사이의 구분이 여전히 ‘문화’라는 틀을 통해 가능할까요?

▽ 레비-스트로스〓아닌 게 아니라 가족과 친족의 형태가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또 변화를 겪어 왔지만 혈연의 개념이 여전히 사회의 핵심을 이룬 것은 인간의 물리적 존재형태가 ‘출산’이라는 과정을 거쳐 재생산돼 왔기 때문입니다. 만약 올더스 헉슬리가 묘사한대로 유전자조작에 의한 실험관 아기들이 프로그램에 따라 대량생산된다면 혈연의 개념은 위협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설령 그런 상황이 일반화된다 해도 실험관을 통해 태어난 인간들은 다시 또다른 형태의 혈연 또는 그에 대응하는 개념을 만들어 공동체와 네트워크를 엮고, 그 네트워크 안에서 ‘지방문화’들을 만들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정체성을 가져야만 존재로서의 의미를 확보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은 차이와 동일성에 관한 수많은 조합들을 통해 형성됩니다.

그렇게 자기 스스로의 의미체계와 정체성을 만들어가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기계적 조합물’ 혹은 ‘천사’라고 이야기하게 될 겁니다.

물리적 실체가 인간을 규정하기 앞서 문화가 인간을 규정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레비-스트로스의 사상▼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vi-Strauss)는 1908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태어나 곧 파리로 이주했다. 소르본느 대학에 입학해 법학과 철학사를 공부했고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도 관심을 가졌다.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해 고교 교사생활을 시작한 그는 33년 로버트 로위의 ‘미개 사유’에 감명받아 인류학에 주목한다. 그 뒤 브라질의 대학으로 자청해서 간 그는 아마존 유역의 수렵채집 부족들에 대한 참여관찰 연구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이면서도 보편화될 수 있는 세계관, 인식틀, 사회조직의 기본원리 등에 관한 기초자료를 확보했다.

41년에 미국으로 가 문화인류학을 본격 연구하는 한편 언어학자 야콥슨과 함께 ‘언어학과 인류학에서의 구조적 분석’을 발표했다. 다시 프랑스로 가서 펴낸 박사논문 ‘친족의 기본구조’는 문화이론의 차원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계속되는 그의 작업은 60년대 이후 사상사에서 ‘구조주의(Structural-ism) 붐’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구조주의를 인류학에 적용한 그의 작업은 인간현상을 모두 하나의 틀 안에서 지식화하고자 하는 야심적인 문제의식에 따른 것. 그 거대한 지적 야심은 기능주의나 역사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사조, 어지러운 정치현실 앞에서 사회참여를 부르짖는 지식인들, 그리고 현상학적 조류 등에 의해 끊임없이 비판되거나 무시되어 왔다. 문제의식의 차원이 다른 결과였다.

그러나 구조인류학의 정신과 자산은 ‘디지털 문화’나 ‘생명공학’ 시대의 인간문화 이해에 도움을 줄 준비가 가장 잘 되어 있는 학문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겪는 급격한 변화를 ‘표면적 차원의 변화’로 취급하면서 이를 종합적 입체도면 안에서 설명하려는 지식틀이라면 상당한 통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체계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키워드/구조인류학▼

구조인류학은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여러 문화의 배후에 있다고 상정된 ‘인간문화의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속성’을 추상적 법칙의 차원에서 밝히려고 노력하는 학문이다. 이것은 특히 개인이나 집단 현상을 넘어선 ‘체계’에 관심을 갖는 구조주의의 특성을 구조언어학과 함께 가장 잘 대변하는 학문 조류다.

구조인류학의 태두인 레비-스트로스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언어학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사람들이 하나의 문화만이 아니라 여러 문화에 적응하고 그것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문화의 차원에도 역사적인 변천 등에 좌우되지 않는 심층적인 공동의 체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문화의 심층적 기본체계와 법칙성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과학’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레비-스트로스가 정리해서 보여주는 ‘사고’와 ‘지식’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우주를 무질서 속에 방기하지 않고 사물과 현상에 질서를 부여해 설명과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는 일이다. 과학의 성립도 실은 자연 그 자체에 질서 또는 체계가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송도영(서울시립대 교수·도시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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