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디지털]시몬 드 보부아르의 '21세기의 여성'

  • 입력 2000년 2월 28일 08시 23분


《휴먼에서 디지털로, 휴먼에서 사이보그로, 육체에서 시뮬라크르로 이동한다는 21세기,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모든 것이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이야기되는 우리 현실에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일까?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이 수십년 싸운 결과 여성운동은 활성화되고, 세상은 변해간다. 작년에는 남녀고용차별금지법, 성폭력방지법 등 법과 제도적인 측면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또 정치면에서는 여성부 신설과 할당제 30%를 약속받았고, 군가산점제와 호주제 폐지 등의 문제를 갖고 남성중심 제도의 폭력성에 제동을 걸고 있다.

그러나 이런 법과 제도적 장치는 역설적으로 여성이 차별받는 사회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법과 제도로 그것을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이라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땅의 여성은 여전히 보부아르가 말한 ‘제2의 성’으로 존재하는 실정이기 때문에 그녀의 기념비적인 저서 ‘제2의 성’을 중심으로 보부아르의 사상을 되새겨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약 50년전(1949년)에 쓰인 ‘제2의 성’이 지금 우리에게 유용한 이유를 몇가지만 들어보자. 첫째, 주체의 문제를 생각케 한다.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철학을 여성문제에 적용하면서 주체와 타자의 문제를 부각시켰다. 주체와 타자라는 개념을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증명하는데 동원했다는 점이 보부아르의 독특함이다. 그녀는 여성을 ‘제2의 성’이라 불렀고 ‘제2의 성’을 ‘타자(他者)’와 같은 의미로 쓴다. 세상과 인식의 주체는 남성이고 여성은 주체인 남성의 대상으로만 위치지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둘째, 법적 또는 정치적 측면이 아니라 문화적이고 인식론적인 접근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여자로 태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진다’는 보부아르의 말이 중요하다. 보부아르는 남성들이 여성을 타자로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여성다움의 신화를 구축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여성들이 자신의 타자성을 비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여성의 ‘신비’라고 불렀다.

셋째, 여성 문제에 대한 여성의 책임을 묻고 ‘여성 연대(連帶)’의 필요성을 말한다. 보부아르는 여성다움의 신화와 여성을 이상화하는 남성 가부장제의 희생자인 여성들이 그 신화를 내면화하고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공모(共謀)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보부아르에 의하면 여성들이 공모하는 이유는 여성이 주체가 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뿌리깊은 공모’는 여성들이 ‘타자’의 역할 속에서 만족하고 자기가 주체가 되기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 보부아르의 말을 우리는 기폭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여성들이 타자이기를 그만두고 싶다면 상황을 극복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고, 스스로 여성들을 위한 변화의 선봉대원이 되어야 하고, 사회주의적인 사회의 변형을 향해 노력해야 한다고 보부아르는 제안한다. 그녀는 여자들이 아내, 어머니, 매춘부, 나르시시스트, 신비주의자의 역할을 벗어나 주체로 서야 함을 설파했다.

여자는 자기를 확립하려는 주체의 기본적인 요구와 여자를 비본질적인 것으로 형성하려는 상황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킨다고 보고 여성의 초월에의 의지와 주체로의 의지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남자들 사이에 분산되어 남자 위주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우리’라고 할 수 있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가족제도, 결혼제도에 매인 여성들이 아버지, 남편, 아들, 오빠를 벗어나 다른 여성과 더 가까운 연대의식을 느끼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보부아르의 분석과 제안은 지금도 의미가 있다.

넷째, 기존의 생물학, 정신분석,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현대 페미니즘 이론의 초석이 된 보부아르의 비판은 여전히 현재성을 갖는다. 기존의 생물학은 여성이 ‘제2의 성’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여성의 생리적 현상, 다시 말해 육체에서 찾으려 한다. 여성과 남성은 신체적 생리적인 차이가 있으며 이 차이는 본질적인 차이라는 주장을 우리는 흔히 접한다.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보부아르의 말은 생물학적 결정론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그리고 보부아르는 남성중심의 정신분석에 안티를 걸었다. “해부학은 운명이다”라는 프로이트의 말이나 그의 거세(去勢)콤플렉스와 음경(陰莖)선망에 대해 비판했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남성 성기를 갖지 않았다고 이등인간이자 이등시민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보았다. 여성이 남성 성기를 선망한다면 그 이유는 “음경 자체가 아니라 사회가 남성에게 부여한 물질적이고 심리적인 특권을 갈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보부아르는 자본주의의 계급사회가 여성문제의 핵심이라고 한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을 비판하며 성차별의 바탕에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권력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사회주의 혁명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그녀 자신의 또다른 주장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인다. 실존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가 낳은 모순이다. 하지만 보부아르가 주체/대상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여성의 관점에서 계급을 바라볼 수 있었으며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이 바로 ‘세습적 계급’임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사회주의 혁명을 향해가는 길목에서 여성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보부아르는 여성운동과 여타 다른 사회운동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제공한다.

여성문제의 중요도에 대한 보부아르의 깨달음은 68년5월 이후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여성단체가 발족된 것과도 연결된다. 남성들과 나란히 바리케이트를 치고 싸웠지만 여전히 자신들은 남성의 성적 봉사물에 불과하거나 비서와 요리사역까지 담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여성들은 깨달았다.

이는 우리 사회의 80년대 여성운동이 처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여타의 다른 운동에 종속되어 여성운동이 진행될 경우 일어나는 문제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는 시민운동에서도 이런 상황에 대한 경계는 여전히 필요하다.

▼ 보부아르 전후의 사상전개 ▼

“‘제2의 성’을 읽지 않은 여자가 있는가? 그 책을 읽고 분발하지 않은 여자가 있을까? 그 결과 아마도 페미니스트가 되지는 않았을까?”(프랑스의 페미니스트 뤼스 이리가라이)

보부아르는 프랑스 페미니즘의 대모, 여성해방의 제2물결을 일으킨 인물로 꼽힌다. 여성운동의 제1물결이 18세기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한 제도적 권리 획득을 향해 움직였다면, 1960년대 후반 이후의 제2물결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보부아르의 여성의 신화, 여성의 ‘신비’에 영향받은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는 미국 여성운동의 기점이었다.

프랑스의 68혁명 이후 신세대 페미니스트들은 보부아르가 관심을 가진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의 접합보다 정신분석에 관심을 갖는다. 그 결과 남성중심의 정신분석을 적극 비판하면서도 정신분석을 수용하는 프랑스 신세대 페미니스트들은 보부아르와는 거리를 두게 된다.

보부아르가 타자화된 여성을 제2의 성으로 명명하고 남성과 ‘같은’ 초월성을 지닌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그 이후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과 ‘다른’ 차이를 적극 수용해 긍정적인 가치로 전환시킨다. 성적 차이를 강조하면서 여성성과 여성의 육체를 찬양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차이의 정치학’을 시작한 셈이다.

보부아르가 언급했지만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했던 여성 내부의 (인종적·민족적·성적) 차이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계속 확장되고 있으며,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입장은 스칸디나비아와 영국으로 자리를 옮겨 지속 발전하고 있다.

▼ 키워드/他者 ▼

보부아르의 핵심개념은 타자(他者)다. 그녀는 실존주의 철학의 즉자(卽自)와 대자(對自), 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자, 초월과 내재라는 이분법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관계, 특히 여성이 제2의 성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녀는 주체가 반드시 객체를 타자화함으로써만 주체로 선다고 말하면서, 사회적으로 남성은 주체(대자), 여성은 객체(즉자)로 존재한다는 논리로 성차별문화를 설명하고자 한다. 또 창조성과 자유를 상징하는 초월성은 대자인 남성의 영역이고 보편내재(普遍內在·사회, 예의범절, 역할정의 등)는 즉자인 여성의 영역이라고 보았다. 보부아르는 여성들이 초월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초월이 내재로 떨어질 때마다 실존은 ‘즉자 존재’로 타락하고, 자유는 사실성으로 타락한다.”

이런 전락이 주체에 의해 강제되거나 동의된다면 이 둘 모두 ‘절대악’이라고 선언한다. “여자를 객체로 응결시키고 내재 속에 갇혀 있기를 요구”하는 남성중심사회는 ‘절대악’을 행하고 있다는 논리다. 보부아르에게 보편적 내재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남성중심의 세계가 되고 이 보편적 내재에 머무르면 ‘영원한 여성’ ‘영원한 타자’로 남게 된다. 타자의 개념은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정신분석과 탈식민주의에서 현재 새롭게 재인식되고 있다.

고정갑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소장·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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