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디지털]경제/케인스의 '디지털 혁명기 정부역할'

  • 입력 2000년 2월 7일 11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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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불확실성의 시대였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움은 물론이려니와 현재 심지어는 과거에 대한 해석과 평가마저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갈브레이스(J. Galbraith)의 말대로 시대정신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사고의 틀도 정형화된 것이 없었다.

증폭되는 불확실성 속에서 21세기는 디지털 혁명과 함께 시작됐다. 인류사의 3대 혁명 중 농업혁명이 전세계에 확산되는 데 5000년이 소요됐고 산업혁명은 150년이 걸렸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은 정보통신 인프라와 인터넷을 통해 불과 30년만에 전세계를 빅뱅으로 내몰고 있다.

디지털 혁명은 종전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주고 있다. 게다가 전세계는 장기 호황 속에 물가안정이라는 신경제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디지털 신제품의 출현과 제조업 유통 금융의 효율성 제고로 막대한 가치가 새로 창출되고 있으니 가히 뉴 골드러시(new goldrush)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 혁명의 메카인 미국에서는 1995년부터 99년까지 정보기술산업의 경제성장 기여도가 약 35%에 이르렀다. 2006년에는 미국 근로자의 절반 가량이 정보기술 관련업계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디지털 혁명은 산업혁명 말기의 경제성장 한계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디지털 혁명이 인류에게 그리고 한국경제에 장미빛 전망만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가상공간이 가졌던 개방성은 점차 정보의 공해로 오염되고 있다. 불필요한 정보만 유통되고 가치있는 정보는 퇴장하는 정보의 그래샴 법칙도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디지털 혁명에 대한 접근가능성(accessibility)은 계층간 정보 비대칭성을 가져와 정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디지털 혁명의 그림자는 이뿐만이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네트워크가 복잡하게 형성될수록 우리는 예기치 않은 외부충격에 점점 더 크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고도화된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다른 부문에서 발생해 전가되는 충격에 쉽게 감염될 수 있다. 꽉 짜여져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조직일수록 외부의 부분적 충격에 전체가 일순간에 무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디지털 혁명은 시장의 기능을 원활하게 하고 그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일조하지만, 반면 어느 한 순간 ‘보이지 않는 손’이 마비되어 그 기능을 상실할 불행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불행의 씨앗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20세기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케인스는 현실 문제를 떠나서는 이론을 펴지 않는 현실적인 경제학자였다. 그는 1920∼30년대 자본주의가 겪고 있던 대량실업과 장기침체를 팽창적 거시정책, 즉 유효수요를 자극하는 정책으로 치유했다. 70년 전 장기불황에서 자본주의를 구했던 그가, 디지털 혁명이 가져다 준 과실에 취해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은 더 이상 불필요하다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팽배한 오늘의 현실을 바라본다면 어떤 진단을 내릴 것인가?

고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디지털 혁명기의 네트워크화된 시장은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이 고도로 조직화될수록 엄청난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의 정도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따라서 과거 정부의 역할이 적극적인 거시경제정책으로 성장과 안정을 꾀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정부의 역할은 시장을 급작스런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 보험과 같은 존재로 변모하고 있다.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 엔진이 고장날까봐 여분의 엔진을 하나 더 갖고 다니는 것은 여간 낭비가 아니다. 하지만 500∼600명의 승객을 태우고 멀리 날아가는 여객기에 만일을 대비한 여분의 엔진을 하나 더 장착하는 것은 비록 평소에는 효율적이지 못하겠지만 위기시에 그 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디지털 혁명기의 정부는 이처럼 가외성(redundancy)을 띤 보험과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평소에 시장 참여자들은 정부의 존재를 효율성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존재로 간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기에는 한번 위기가 찾아오면 그 파국의 정도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막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디지털 혁명은 경제의 모든 조직을 전체 네트워크에 담아내어 효율성을 증진시키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자들은 이것을 경쟁을 통한 시장경제의 산물이라고 칭송한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의 가속화로 불필요해 보이는 정부의 역할은 사실상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과거 대공황 시대의 거시경제정책을 구사하는 정부의 필요성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부는 미시적으로 경제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고 공정한 룰을 만들어 집행함으로써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시장을 지켜내는 정부다. 이러한 정부의 개입주의를 나는 ‘개혁적 케인스주의’라고 부르련다.

시대가 변화하고 그에 따른 정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현실주의자 케인스가 만약 이 시대에 한국의 지식인으로 살아있다면, 개혁적 케인스주의에 동의하지 않을까?

아울러 케인스는 상아탑에만 갖혀 급박하게 변화하는 현실과 부딛치기를 꺼리는 지식인들을 비판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지식인들이 사회적 소명을 갖고 자신의 목소리를 키워줄 것을 요구할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연구분야나 활동범위를 좁히면서 현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는 한국의 지식사회 풍토를 돌아보며, 케인스가 스승인 마샬(A. Marshall)의 전기에 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음미하게 된다.

“…교육상 유용한 훌륭한 경제학술서가 아마도 한 세대에 한 권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경제와 동떨어진 이론은 별 가치가 없다. 경제학이 진보하고 유용한 학문이 되기 위해서 경제학도들이 써야 할 것은 두꺼운 학술서가 아니라 차라리 시론적인 팸플릿이다…”

정운찬<서울대교수·경제학>

▼키워드/'보이는 손'▼

케인스는 ‘통화개혁론’(1923)과 ‘화폐론’(1930)을 통해 화폐수량설을 통렬히 비판했다. 통화량 변화가 총지출 수준에 직접 영향을 미쳐 물가수준을 변동시킨다는 화폐수량설에는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자신의 일생을 화폐수량설로부터의 긴 탈출과정이라고 했을까.

한편 케인스는 ‘자유방임의 종언’(1926)과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서 시장기구에 의해 균형달성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맹렬히 비판했다. 대신 대량실업과 장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거시경제정책(공공사업)을 시행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케인스적 전통을 오늘날 한국 경제상황에 확대 적용한다면 ‘개혁적 케인스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거시경제정책으로 불황에서 자본주의를 탈출시킨 것이 케인스주의라면, 개혁적 케인스주의는 정부의 미시적 구조조정과 경제적 룰(rule)의 확립 및 집행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버리고, 시장원리를 저해하는 요소들을 정부개입을 통해 제거하는 ‘보이는 손(visible hands)’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20세기 경제학의 양대산맥/케인스-하이에크▼

20세기 경제학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학자를 두 명 꼽으라면 단연 케인스(J.M. Keynes, 1883-1946)와 하이에크(F.A. Hayek, 1899-1992)다. 그들의 1930년대 논쟁은 20세기 최고의 학문적 명승부였다. 논리 정합성을 중시하는 하이에크와 현실 직관력을 중시하는 케인스의 상이한 태도는 자본주의관과 정책관에 큰 차이를 가져왔다.

하이에크는 신자유주의 이념을 확립하고 자유방임 원칙에 따라 장기적 관점에서 통화가치를 안정시켜 시장질서를 유지할 것을 강조했다. 반면 케인스는 자유방임을 비판하며 정부가 적극 개입해 자본주의 결함을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이에크는 시장 메커니즘이 불완전한 정보에 기초한 개인의 경제활동을 성공적으로 조절하므로, 거시적 경제질서를 유지하는 데 정부가 시장 메커니즘보다 우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케인스는 개인의 심리적 요인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활동을 시장 메커니즘이 성공적으로 조절한다는 것은 우연일 뿐이며, 정부개입이 없다면 자본주의 시장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두 사람의 논쟁은 대공황 상황 속에서 케인스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만성적 경기침체와 대량실업의 위기에, 완전고용균형을 전제로 자유방임과 장기적 정책처방을 중시하는 이론보다 적극적 정부개입과 단기적 정책처방을 강조하는 이론이 승리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번영이 둔화되고 스태그플레이션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서 케인스적 거시처방이 그 효력을 잃게 됐다. 그러자 미시적 분석과 자원배분 문제를 강조하는 하이에크 이론이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케인스의 사고는 사뮤엘슨(P. Samuelson)에 의해, 하이에크의 전통은 프리드만(M. Friedman)에 의해 계승됐다. 하이에크와 케인스, 두 사람 중 누가 옳았는지는 각자의 가치관과 시대 상황에 따라 판단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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