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디트 헤르만을 좋아하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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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책방의 진열대]<5> 강원 속초 ‘동아서점’

1956년에 문을 연 강원 속초시 ‘동아서점’ 외경. 동아서점 제공
1956년에 문을 연 강원 속초시 ‘동아서점’ 외경. 동아서점 제공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다른 이도 좋아해줄 거라고 기대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내 얘기를 한 귀로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거나, 얼른 자신의 ‘최애’ 작가 얘기를 쏟아내려 워밍업할 뿐이었다. 하물며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팔고 싶다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닌 이상, 포기하는 편이 빠를지도 모르겠다.

독일 소설가 유디트 헤르만이 그랬다. 7년 전 단편집 ‘여름 별장, 그 후’를 처음 읽고, 어딜 가든 그 책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와 뗄 수 없는 사이라 믿고 싶은 마음 반, 누굴 만났을 때 곧장 책을 꺼내며 “요즘 빠져 있는 작가인데 말이야…”라며 얘기를 늘어놓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한 번은 헤르타 뮐러(루마니아 출신 독일 작가)를 좋아하던, 늘 살짝 구겨진 표정을 짓고 살던 어른스러운 친구가 말했다.

“그 소설 말이야, 소녀 취향이야.”

약간의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었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이후로도 가스 불을 켜고 끄듯이 생활의 일부로 헤르만의 소설을 반복해 읽었다. 어떤 부분은 시(詩)라고 생각했기에 그냥 외우고 다녔다.

몇 해가 지나 나는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됐다. 책 정리에 한창이던 밤, 기다렸다는 듯 헤르만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은 이 작가를 제대로 만나본 적 없을 거야. 그 만남은 곧 우리 서점에서 이뤄지겠지. 중요한 건 아직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가 드물었다는 사실이야.’

기대감에 부풀어 소개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 눕혔다가 세웠다가 다시 눕혀 진열하기를 반복. 심지어 여러 진열대에 퍼뜨려 놓기까지 반복하던 2년째, 나는 포기했다. 예상보다 훨씬 반응이 미미했다. 소개나 진열 방식을 바꿔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힘이 빠져 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헤르만 책 3권 가운데 2권이 품절됐다. 남은 한 권은 단편집 ‘단지 유령일 뿐’.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나는 이 책을 모으기로 했다. 팔리지 않아도 계속 주문했다. 10권쯤 쌓였을 때 멈췄다. 한 권이 팔리면 재고로 보관하던 한 권을 채워두고, 또 한 권을 새로 주문했다.

이따금씩 누군가 헤르만의 책을 집어 들면, 묻지 않아도 소심하게 속삭인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예요.” 그러고 재고 수량을 확인한다. ‘흠. 아직 많군.’ 곧이어 주문 창을 켠다. ‘그래도 한 권 더….’

○ ‘동아서점’은

속초에서 1956년부터 63년째 운영되고 있는 동네책방이다.
 
김영건 ‘동아서점’(강원 속초시 수복로·교동) 운영자
#동네 책방#속초#동아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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