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의 연극인 열전]배우 박완규 “나는 나의 과거 위에 서 있다”

심규선 기자 입력 2017-05-14 22:05수정 2017-05-1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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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 치고 어려운 고비를 넘기지 않은 사람이 없다. 아니, 어쩌면 어려운 고비를 자청한 사람들이 연극인인지도 모른다. 배우 박완규도 예외가 아니다. 입단 후 10년간 양아치, 잡범, 거지 역 등 정말로 별 볼일 없는 역만 맡았으나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가 2009년 ‘뉴욕 안티고네’에서 무게 있는 ‘거지’역을 맡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산전수전 다 겪어서인지 그는 부드러운 역과 센 역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자유로운 영혼’을 만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180㎝의 큰 키는 한데바람에 이리저리 시달렸을 것 같고, 검은 얼굴은 내리 쬐는 태양에 무방비로 노출된 탓이라고 잠시 착각에 빠진 건. 몸은 착각일지 몰라도 그의 말은 확실히 자유로웠다.

“술은 고1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셨다. 더 어렸을 때는 막걸리를 좋아했다. 지금은 청탁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술보다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혼자서는 안 마신다. 함께 연습하는 사람이나, 공연 보러 온 사람들과 마시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분빠이(더치페이)한다. 문제는 요즘 숙취가 길어진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무 것도 못할 때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그러나 주사는 없다.”

연극인을 인터뷰하며 초장부터 웬 술타령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술을 매우 좋아해서 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고, 술로 인해 인생의 전환점이 선 적도 있어 소개를 할 수밖에(?) 없다. 나로서는 지금껏 인터뷰한 연극인 중에서 무대 밖의 삶을 스스럼없이 보여준 경우도 처음이어서 흥미롭다.

연극을 하며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는 더욱 그랬다. 그런데 요즘은 상복도 터지고, 연기에도 물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누구인가. 극단 백수광부의 배우 박완규(40)다. 5월11일 동아일보에서 그를 만났다.

주요기사
1. 터닝 포인트

배우 인생에 전환점을 가져온 작품을 물었다. 곧바로 나왔다.

첫 번째, 고래(이해성 작·연출, 2008년).

“북한잠수정 부기관장으로 나왔는데 처음으로 진지한 역에 도전한 작품이었다. 연극판 직업어로는 첫 ‘니마이(二枚)’역이었다. 워크숍 때 선배들은 나를 보고 ‘어색하다’고 했다. 평상시 까불이 같은 내가 진지한 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오기가 생겼다. 이해성 연출은 오히려 ‘그렇지 않다. 주인공 같다’고 적극 옹호해 줬다. 열심히 했다. 결과적으로 주변 평도 좋았다. 이 작품을 통해 나를 알게 된 연출이 많이 늘었다.”

‘고래’는 속초 앞바다로 침투했던 북한잠수정의 내부를 고래 뱃속으로 치환시키고, 그 속에서 모두 자폭하는 북한군인들을 다룬 작품. ‘니마이’는 일본의 가부키에서 나온 말로 ‘니마이메(二枚目)’가 맞다. 출연배우 일람표에서 두 번째 장에 쓰인 인물, 즉 단장 다음의 미남 주역배우를 뜻한다. 어쨌든 박완규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강하고, 센 역할도 할 수 있는 ‘니마이메’임을 어필했다.

두 번째, 뉴욕 안티고네(야누쉬 그오바츠키 작·이성열 연출, 2009년).

“처음으로 주인공 같은 역을 맡았다. 그 전에는 대부분 코러스나 단역이었는데, 극단 총무를 잘 했다고 포상으로 준 역이다. 2001년에 입단했으니 거의 10년 만에 역다운 역을 만난 것이다. 아직도 나를 만나면 ‘뉴욕 안티고네’를 말하는 사람이 많다. 배역이 나랑 잘 맞았고, 정말 열심히 했다.”

‘뉴욕 안티고네’는 뉴욕의 노숙자들 얘기다. 그들을 통해 거대한 빛에 가린 현대사회의 그늘을 천착한다. 그는 폴란드 출신의 비열한 노숙인 ‘벼룩’을 연기했다. 백수광부 대표인 이성열 연출은 그제서야 “이제 어디 가서 배우라고 해도 되겠다”고 칭찬했다. 또 하나. 이 작품에서 그의 연기를 유심히 관찰했던 사람이 있었다.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연출. 박근형은 그를 ‘출세작’으로 초대한다.

2010년 ‘잠 못 드는 밤은 없다’에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로 나온 박완규. 일본 작가 히라타 오리자가 쓰고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이 연출했다. 박완규는 이 작품으로 3대 신인연기상을 모두 받는다. 그는 말을 하면서, 동시에 발을 부비는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겉은 멀쩡한 것 같지만 내면은 불안함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박근형은 ‘뉴욕 안티고네’를 보고 박완규를 발탁할 생각을 했다고 하니, 사람들의 인연이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세 번째, 잠 못 드는 밤은 없다(히라타 오리자 작·박근형 연출, 2010년)

“일본인 은퇴 이민자들이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휴양촌이 배경이다. 나는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였지만, 휴양촌에서는 일본인들에게 DVD도 배달해 주며 그럭저럭 살고 있는 하라구치 미쓰루 역을 맡았다. 개막 이틀 전, 박근형 연출의 제자들인 서울예대생들이 관람을 했는데, 앙케이트조사에서 ‘미쓰루가 너무 히키코모리 같지 않다’는 의견을 많이 냈다. 약간 대인기피증 느낌을 줘야 할 것 같아 상대방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거나, 다른 사람이 다가오면 놀란다거나 하는 연기를 넣었다. 그래도 출연은 15분 정도밖에 안 됐다. 다른 배우들도 동등하게 참여하는 연극이라서.”

비록 15분밖에 안 나왔지만, 그는 ‘인상적인 인상’을 남겼다. 이쿠코(예수정)가 “혼자 있을 때는 뭐해?”라고 묻자 대사를 하면서 발을 서로 부비는 연기를 했는데, 이 연극을 상징하는 명장면이 됐다. 겉은 멀쩡한 것 같지만, 내면은 불안한 히키코모리의 심리를 ‘극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해서다(1981년 ‘만추’에 출연한 극중 살인범 김혜자가 발가락을 오그라뜨리는 것만으로 여자의 절정을 표현해 화제가 된 일이 떠오른다). 이 연극에 나오는 일본인들은 일본을 떠나 외국에서 히키코모리처럼 살아가는 소위 소토코모리들이니 연극 전체는 조용하다. 그래서 ‘발연기’가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네 번째, 안티고네(장 아누이 작·김승철 연출, 2010년).

“오이디푸스 왕이 죽은 후 테베의 권좌에 앉은 크레온 왕을 맡았다.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와 격투기장에서 피 튀기는 설전과 육탄전을 벌인다. 그 역에 흠뻑 취했다. 그 전 5월 11일부터 6월 5일까지는 히키코모리를 연기하고, 7월 1일부터 크레온 역을 맡으니, 주변에서는 농담으로 ‘엄청나게 출세했다’고 했다. 맞다, 나는 대단히 운이 좋은 배우다.”

운만 좋은 게 아니었다. 상복도 터졌다. 그는 2010년에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상,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상,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을 받았다. 연극계에서는 이걸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한다.

2.터닝 포인트를 잉태한 터닝 포인트

그는 논산훈련소가 있는 연무대에서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대전으로 이사와 한밭고와 혜천대 관광영어통역과를 졸업했다.

“신부가 되려다 포기하고, 고교 2학년 때부터 놀기 시작했다. 재수하기가 싫어 혜천대에 입학했다. 수리탐구는 형편없었으나 그래도 언어, 외국어는 그나마 나았다. 관광영어통역과를 나오면 가이드를 하나 보다, 그러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당시 아버지가 그 대학 관리실에 계셔서 학비도 공짜였고. 그런데 학과가 통역보다는 호텔경영 등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나는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삶은 정말 싫다. 내가 지금 연극하는 이유도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다. 성당에서 성극(聖劇)하고, 대학에서 영어 연극하던 경험을 살려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대전 서구갑 선거관리위원회와 서구청 문화공보실에서 28개월간 공익근무를 마치고 2000년 말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다음해 백수광부에 입단한다(그는 처음에는 떨어뜨렸는데 어찌어찌해서 나중에 붙여줬다는 풍문이 있다며 자신의 입단 경위에 대해 아직도 의문(?)을 표시한다).

그의 말대로 그는 “전공도 안했고, 얼굴이 되는 것도 아니고, 연기를 잘했던 것도 아니어서”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게 다른 단원들에게는 반항하는 것으로 보여 더 힘들었다.

입단 후 처음 출연한 작품이 알베르 카뮈의 ‘오해’(류주연 연출)였다. 자신의 말대로 ‘쓰레기 같은 연기’로 죽을 쒔다. 같은 해 ‘불티나’에서 ‘나만이’라는 거지로 나왔으나 ‘한번만’이라는 대사를 딱 한번만하는 역이었다.

그러다가 2002년 2월경 ‘술이 웬수’인 큰 사고를 친다. 한일월드컵 열기에 미리 빠져 ‘붉은 악마’로 광화문에서 살다시피 할 때였다.

전날 친구와 술을 마셨고, 그 다음날 아침 ‘사막을 걸어가다2’(공동창작)라는 특별공연에 지각을 해 공연을 30분이나 지연시켰다. 동료가 와서 깨우지 않았다면 공연을 펑크 냈을 것이다. 이성열 대표는 1년 동안 극단 출입을 금지시켰다. 연극 이름대로 사막을 홀로 걸어가게 된 것이다.

외롭고, 슬프고, 화가 나고, 절박해서 통 밖으로 나가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히키코모리였다. 그 때의 경험이 ‘잠 못 드는 밤은 없다’의 히키코모리 역을 연기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그때의 경험 때문은 아니지만, 그는 지금도 별일이 없으면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작은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릴 때가 많다고 한다).

그는 극단에 못 나오는 동안 신촌의 한 바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타로점도 봐주고 마술까지 배워 손님을 접대하자 영업이 꽤 잘 됐다. 사장이 후하게 월급을 줘서 그 돈으로 당시 혼자 살던 전셋집을 넓히기도 했다(그 후에도 생계를 위해 그 바를 6,7년간 왔다 갔다 했다고).

징계는 8개월만에 끝났다. 극단으로 돌아와 정말로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2007년까지 15편 이상의 연극에 출연했지만 대부분 양아치, 잡범, 거지 등이었다.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 위에 소개한 ‘고래’ 초연 때부터였다. 2006년 1년간 총무를 맡아 극단을 그럭저럭 잘 운영하면서 선배들과의 갈등도 많이 누그러졌다.

2015년의 ‘소뿔 자르고 주인 오기 전에 도망가 선생’에서 박완규는 무술고단자 황백호 형사 역을 맡았다. 이 연극에는 극중극, 극중극중극이 나온다. 사진은 일이 잘 안 풀려 화가 나 있는데 애인이 핫도그를 먹으라고 귀찮게 구는 장면이다. 박완규는 이 작품을 자기는 좋았다고 생각했으나 관객은 그렇지 않다고 평가한 작품으로 꼽았다.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제공


3. 두 물줄기가 만나면

어렴풋이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그는 자신의 특장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어떤 연출은 자기를 소프트하고 섬세한 연기를 잘 한다고 보고, 어떤 연출은 터프하고 강력한 연기를 잘 한다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연기는 ‘뉴욕 안티고네’와 ‘잠 못 드는 밤은 없다’이고, 후자가 ‘고래’와 ‘안티고네’다.

배우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평가가 없을 듯하다. 어느 역을 맡겨도 해 낼 수 있다는 뜻이니. 두 명의 스승 덕분이다. 이성열과 박근형 연출이다.

그는 “이성열 연출은 아직도 무서운 아버지 같다. 박근형 연출은 동료 같고, 친구 같다. 스타일도 나와 비슷하다. 강한 이미지와 부드러운 이미지를 다 소화할 수 있는 배우라는 평가는 내게는 큰 행운이다. 배우에게는 기회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능력을 살릴 기회가 왔다.

그는 지난해 국립극단 시즌단원으로 ‘국물 있사옵니다’(이근삼 작, 서충식 연출)에서 주인공인 ‘김상범’을 맡았고, 극단 파수꾼의 ‘괴벨스 극장’(오세혁 작, 이은준 연출)에서는 괴벨스 역을 맡았다. 주인공을 맡았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박완규 본인이 두 작품 모두, 자신의 양면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연극이었다고 평가한다는 점이다.

“연습 때는 몰랐는데 공연을 하면서 내가 계속 느꼈던 것이 김상범은 내가 했던 모든 공연, 모든 캐릭터의 집합체구나 하는 거다. 처음에는 히키코모리 같고, 중반에 악해졌을 때는 크레온이나 ‘과부들’의 중위 같다. 내 안에 다 있구나. 캐릭터만이 아니라 연극을 하던 내 모습이 다 있는 거다. 2001년 백수광부에 들어가면서 연극을 시작해서 2010년에 상을 처음 받았는데, 그때까지의 과정이 김상범과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연극이 뭔지도 모르고 처음 시작했을 때, 얼굴이 그게 뭐냐, 호흡이 뭐냐, 싸가지가 없다, 인사 안 한다, 그런 이야기도 듣고, 왕따도 당하고, 그러다가 열 받아서 술 먹고,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아침 특별공연 늦고, 1년 동안 극단에 불이 나고 물이 넘쳐도 오지 말라는 징계를 먹었다.…그런데 나만 그런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기쁨만 있고 슬픔만 있고 그렇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김상범이 느끼고 있는 어떤 상황들, 그 상황의 심리들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얹히면 된다”(계간 연극평론, 2016년 겨울호).

마지막의 ‘그냥 얹히면 된다’는 말은 일부러 꾸밀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국물 있사옵니다’는 1966년에 초연한 작품이다. ‘상식’과 ‘평범’에서 이름을 따온 그저 그런 샐러리맨 ‘김상범’이 비상식과 비평범의 방식으로 물질과 권력을 추구하는 야심가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세태고발극이다. ‘고전’의 조건에는 시간이 들어간다. 우리 작가가 50년 전에 쓴 작품을 다시 공연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반갑다. 나는 작품의 배경이 됐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고, 연대를 달리해서 몇 차례 직접 본 적도 있어 ‘국물 있사옵니다’라는 제목만 들어도 감회가 새롭다.

‘괴벨스 극장’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한다. ‘국물 있사옵니다’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김상범의 캐릭터가 바뀌는 데 비해, 괴벨스는 괴벨스의 잔혹함과 비굴함이 동시간대에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박완규의 장점인 양면성과 그의 인생까지 캐릭터에 얹었으니 연기가 좀 좋았을까. 그는 남들은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배역이 몸에 착 달라붙었다는 뜻이다. 그는 두 작품으로 지난해 연극상 최고권위인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다.

“이번에 ‘괴벨스 극장’과 ‘국물 있사옵니다’로 수상한 박완규 씨는 조금 수상이 늦었다고 할 정도로 최근 그야말로 물오른 왕성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는 모든 역에서 분명한 해석과 그것을 내면적, 신체적으로 구현하는 힘, 그리고 연기에 있어 구체성, 논리성, 감성, 열정, 광기 등을 조화롭게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관객과 평단에서 고르게 사랑 받는 배우, 자주 봐도 싫증 안 나는 연기자로 이미 자리매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김방옥 심사위원장의 제53회 동아연극상 심사경위 중에서)

최고의 칭찬이다.

“상은 영광이다. 내가 열심히 했구나, 하는 심리적 보상이 된다. 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서는 것은 옳지 않지만, 열심히 한 결과로 받는 것은 기분이 좋다. 회식비도 생기고. 상을 받았다고 해서 배우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건방지다는 말을 안 들으려면 더 조심해야한다. 그래서 농담으로 ‘상을 받으면 3년 동안 재수가 없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웃음).”

2016년 국립극단이 공연한 ‘국물 있사옵니다’의 마지막 장면. 박완규는 주인공 김상범을 연기했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한때 자신이 신봉했던 ‘옛 상식’을 버리고 정글에서나 통할 법한 ’새 상식‘에 맞춰 오로지 물질과 권력을 추구한다. 모두 얻긴 했으나 기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김상범이 갈 데까지 가보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허공을 향해 입으로 ‘빵’하며 총을 쏘고 있다. 허공에 발사되는 총알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슬픔을 실어. 박완규는 이 작품과 ‘괴벨스 극장’의 호연으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다. 국립극단 제공


4. 배역을 찾아서, 나를 찾아서

그와 배역의 관계를 물어봤다. 몰입과 거리두기라는, 서로 상치되는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거리를 둔다는 말은 이해를 못하겠고, 몰입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 인물에 확 빠지는 것이 몰입은 아니다. 그래서 거리를 둔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몰입을 하기 위해서는 그 역할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 인물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몰입이다. 주인공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주인공이 아니라 주변이다. 주변을 보지 않고, 자기 인물에만 빠져버리면 그건 정말 잘못된 것이다.”

그는 “캐릭터를 너무 연구하면 실패한다. 캐릭터를 먼저 만들어서 연기를 하는 걸 안 좋아 한다. 인물을 이해하는 게 먼저다”라는 말까지 한다.

그래서 그는 “내가 접근하는 방식이 나에게는 백퍼센트 옳다”거나 “나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를 강요받으면 연기가 힘들다”고 한다. 자기 방식대로 인물을 해석하고 연기하는 걸 좋아하지, 세세하게 지시받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율을 줬다가 술을 너무 마셔 예전 같은 일이 벌어지면 어떡하나, 하고 아픈 데를 슬쩍 건드려봤다.

“그렇지 않다. 연습과 공연할 때는 절대로 안 그런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나. 그는 지금까지 64개 작품에 출연했다.

“배우의 원동력은 욕심과 질투다. 너무 표출되면 문제겠지만, 깜냥 범위 안에서는 다하고 싶다. 모든 배우는 욕심을 갖고 있고, 뭐든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험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이를 더 먹으면 크레온 왕을 다시 하고 싶고. 얼굴이 까맣다 보니 오셀로 역도 해보고 싶고.”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 “쎈 거, 쎈 작품을 하고 싶다”며 이런 얘기도 했다.

“오이디푸스를 해 보고 싶다. 그 인물을 틀어버리고 싶다. 오이디푸스를 X새끼로 만들고 싶다. 나는 오이디푸스가 쓰레기 같은 인물로 느껴진다. 오이디푸스를 그냥 우리 인간군상으로 보여주고 싶다. 오이디푸스는 아무 것도 못하고 어떡하지? 하고 생각만 하는 인물이다. 사실 우리가 그냥 그러고 사는 거 아닌가? 고뇌하지만 답을 못 내리는 삶. 고민만 하지 행동은 못하고 술 먹고 떠들기만 하는 우리들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오이디푸스를 우유부단하고 찌질한 인물로 만들고 싶다. 그는 절대 멋있는 인물이 아니다.”(웹진 연극in, 2013년 3월, 김은성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배우가 주인공을 비틀고, 고전을 현대로 가져오고 싶다면 연출가 수준이 된 것이다(?). 다만, 그는 어떤 작품에 출연하든 자기가 먼저 재미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재미’는 그가 직장인을 버리고 배우를 택한 첫 번째 이유다(그는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배우가 됐다는 말도 한다. 실제로 ‘줄리어스 시저’를 연출한 김광보는 박완규 때문에 연습을 오후에 하자고 한 적도 있다고).

“나와 관객이 모두 재미있으면 그게 최선인데, 그런 작품이 ‘고래’, ‘잠 못 드는 밤은 없다’, ‘국물 있사옵니다’ ‘괴벨스 극장’ 등등이다. 나는 재미있었지만 관객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은 작품이 2015년의 ‘소뿔 자르고 주인 오기 전에 도망가 선생’(최치언 작·김승철 연출)과 ‘천개의 눈’(정영훈 작·박해성 연출)이었던 것 같다. 너무 어렵거나 너무 꼬았거나 너무 대중적이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천개의 눈’ 같은 작품은 좋아하는 관객이 10% 쯤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나는 그런 관객도 너무 좋아 한다.”

여성 파워블로거들이 그를, 그의 연기를 극찬한 사례가 여럿 눈에 띈다.

“나 이분 왜 이렇게 좋니, 이 분은 비장미와 허당을 정말 기가 막히게 오간다.”(‘겨울이야기’를 보고)

“박완규 배우의 익살스러움과 재치는 이 작품에서 정점을 찍는 듯한 느낌이다. 어찌 이 배우를 보고 사랑에 빠지지 않을쏘냐.”(‘국물 있사옵니다’를 보고)

“사실 이 연극을 예매하게 된 것도 포스터에 나온 박완규 배우 덕분이었다. 어떤 연기변신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박완규 배우. 역시 믿고 보는 배우다. 엄지 척!!”(‘소뿔’을 보고)

그래서 물었다. 여자 관객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걸 실제로 느끼나.

“허당이다. 나는 평범한 골수팬이 없다. 내 팬은 연극을 전문적으로 보는 관객이나 연극에 종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작은 역할을 맡으면 아무도 보러 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끝까지 혼자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애인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지만 결혼은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언제 결혼하든 상대방도 꽤 나이를 먹었을 테니, 아이는 원치 않으면 낳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기르는 것이 힘들 것 같다는 말과 함께(성인들의 결정에 기자가 뭐라 할 권한이야 없다. 다만 다른 직업군보다 연극인들이 더 아이를 기피하는 것은 역시 경제력 때문인 것 같아 가슴이 짠하다)

5. ‘아침 드라마’에 대한 미련

그는 2010년 ‘아침 드라마’(박근형 작·연출)에 ‘남자’로 출연했다. 그러나 그건 연극이었다. 그는 진짜로 TV의 아침 드라마에 나오고 싶어 한다.

“부모님을 위해서다. 부모님은 내가 TV에 나오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그런데 부모님 친구들은 다르다. 내가 탤런트인줄 안다. 그러니 한번 TV에 나와 부모님의 낯이 서도록 찾아가는 서비스를 해드리고 싶다.”

부모님이 ‘봄날’을 보러 오신 적이 있다. 어머니는 ‘국물 있사옵니다’도 관람하는 등 아버지보다는 더 자주 아들의 연극을 본다. 그런데 볼 때마다 슬퍼하신단다. 아들이 무슨 역을 맡아도, 고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는 게 아들의 해석이다.

그는 영화에도 몇 번 나왔다. 최근까지도 영화 오디션에 숱하게 응시했으나 족족 떨어졌다.

“영화는, 기회가 있으면 하고 싶다. 그런데 오디션에 자꾸 떨어지니 기분도 나쁘고, 재미도 없다. 앞으로는 내 연기를 본 사람이 나를 찾아오길 기대해 본다. 물론 오디션 기회가 오면 또 볼 것이지만, 지금은 쉬고 있다. 아직 운이 안 된 것 같다. 방송도 기회가 오면 하고 싶다. 절대로 연극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2000년 말 서울에 올라와 잠시 형님 집에 얹혀살다가 충정로, 신촌을 거쳐 2005년부터 12년간을 모래내 성산회관 근처에서 혼자 살았다. 그때는 종종 한강 둔치로 걸어가 작품과 배역에 대해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올해 성신여대 후문으로 이사를 했다. 전세금 6000만원에 관리비포함 월 10만원의 옥탑방이다. 그래서 요즘은 성북천에 앉아있을 때가 많다.

그가 성북천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그의 머리 속에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줄 새로운 캐릭터의 모습이 꿈틀대길 기대해본다. 배우 박완규를 위해서, 한국 연극을 위해서.

(박완규가 출연했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오해’ ‘시골의사’ ‘불티나’ ‘자객열전’ ‘벚나무 동산’ ‘눈 속을 걸어서’ ‘굿모닝? 체홉 2’ ‘야메의사’ ‘물고기의 축제’ ‘오레스테스’ ‘고래’ ‘뉴욕 안티고네’ ‘봄날’ ‘너무 놀라지 마라’ ‘갈매기’ ‘오장군의 발톱’ ‘잠 못 드는 밤은 없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사마이야기’ ‘아침 드라마’ ‘보이체크’ ‘장석조네 사람들’ ‘과부들’ ‘로미오와 줄리엣’ ‘북어 대가리’ ‘칼집 속에 아버지’ ‘피리부는 사나이’ ‘천개의 눈’ ‘햄릿’ ‘줄리어스 시저’ ‘즐거운 복희’ ‘소뿔 자르고 주인 오기 전에 도망가 선생’ ‘토막’ ‘겨울이야기’ ‘택배왔어요’ ‘국물 있사옵니다’ ‘괴벨스 극장’ ‘실수연발’ ‘리처드 3세’ ‘메디아’ ‘가족’ 등)
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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