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래한 초콜릿의 계절 [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68〉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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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2000년에 개봉한 영화 ‘초콜릿’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다. 1950년대 프랑스의 한 시골마을에서 초콜릿이 사람들에게 삶의 활력과 사랑을 전파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준다는 이야기다. 과학자들은 초콜릿이 일종의 최음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줄 생물학적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젊은 연인들은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으로 디저트를 만들거나 박스에 담으며 기분이 고조됨을 느낀다는 것이다.

초콜릿의 역사는 기원전 1900년 멕시코에서 시작된다. 카카오를 갈아 옥수숫가루, 고추를 섞어 마셨다고 한다. 과연 어떤 맛일까? 추운 겨울 따뜻하고 달콤 쌉싸래한 코코아를 떠올리는 현대인들에게는 상상초월이다. 하지만 낙차를 이용해 거품을 만드는 방법으로 쓴맛을 줄였다니 라테로 불리는 거품 사용법의 시조 아닌가 싶다. 그들은 카카오가 깃털뱀신이 준 선물이라 믿었다. 아즈텍 사람들은 카카오를 화폐처럼 거래도구로 사용했고 왕족만이 먹을 수 있었다. 1519년 몬테수마 황제는 정복자 코르테스에게 황금으로 만든 50개의 컵에 카카오 음료를 담아 대접했다고 한다. 물론 초콜릿보다는 번쩍이는 황금에 그의 눈이 돌아가지 않았을까?

초창기 카카오는 쌉싸래한 맛 때문에 위장을 달래는 약으로 사용했다. 꿀이나 설탕, 바닐라를 곁들어 스페인왕궁에서 즐기다 선교자들이 정력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퍼뜨리면서 1620년경 수백만 파운드가 스페인에 수입되었다. 예수회는 농장을 만들고 교역을 하면 쉽게 부자가 될 것을 예측하고 포교지역마다 재빨리 카카오농장을 세웠다. 1701년, 스페인의 카디스 항구에 수상한 8개의 화물이 도착했다. 예수회장이 수신인으로 돼 있는 초콜릿이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무거운 초콜릿은 안에 순금 덩어리를 감싸고 있었다.

초콜릿을 만들기 전 최고의 맛과 색을 위해 카카오 콩을 뜨거운 햇빛에 발효시킨다. 그 후 콩을 볶고 껍질을 벗긴 것이 바로 초콜릿이다.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인력 보충을 위해 아프리카 노예 이동이 시작됐고, 일반인들도 초콜릿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코코아의 주 생산지는 적도 근처였는데 1875년 미국의 노예 해방 이후 서아프리카로 옮겨 갔다. 오늘날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는 세계 코코아의 70%를 생산한다. 서아프리카 전역에 있는 많은 농장이 서유럽 기업들에 카카오를 공급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현지인들이 아직도 노예와 다를 것 없는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고, 심지어 어린이도 적지 않다.

초콜릿의 세련된 광고는 관능적이고 퇴폐적이며 뭐라 설명하기 힘든 ‘아우라’로 우리를 유혹한다. 1861년 영국인 리처드 캐드버리는 하트 모양의 박스 안에 각각의 다른 맛들을 조합한 초콜릿을 개발했다.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밸런타인 신부를 기념하는 날에 초콜릿을 주고받자는 마케팅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결코 달콤할 수만은 없는 초콜릿의 쌉싸래한 맛도 함께 음미해야 할 것 같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초콜릿#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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