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기자의 억지로 쓰는 문화수다]나라 망친 라스푸틴과 신돈은 처음엔 국민 지지라도 받았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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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도배한 검색어

정양환 기자
정양환 기자
 찾질 못하겠다. 이럴 땐 뭐라고 해야 맞는 건지. 자꾸 멍해진다. 세월호 땐 가슴이 찢어지더니 이번엔 뇌가 찢어진다. 젠장.

 인터넷 검색어도 난리 났다. 연예인 동정 가득했던 순위가 묵직한 혹은 당연한 말로 채워졌다. 휴대전화나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한숨이 포털사이트를 뿌옇게 뒤덮었다.

 그래, 어차피 선배들이 써보라 해서 ‘억지로 쓰는’ 글. 이번엔 요즘 세상을 도배한 검색어들을 뒤져봤다.

청동기 시대 신권정치는 무당정치
하야는 민초의 삶으로 내려가는 것


 ①라스푸틴=풀네임은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1869∼1916). 제정러시아 시대 ‘희대의 요승(妖僧)’이라 불린다. 최후의 황제 니콜라이 2세와 황후의 총애를 얻어 온갖 전횡을 일삼았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고려 공민왕 때 신돈(?∼1371)도 함께 거론되곤 한다.

 두 인물의 생애는 워낙 회자되니 길게 다룰 필요는 없겠다. 전설이나 괴담 같은 얘기도 접어 두자. 다만 한 역사학자는 “요즘 자주 비교되는 인물과는 급이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물론 ‘나라를 망쳤다’는 공통점이 있죠. 하지만 신돈은 권문세족에 대항해 민생정치를 펴려던 인물입니다. 백성은 ‘문수보살의 재림’이라고 했어요. 라스푸틴도 악마로만 조명되지만, 초창기엔 고된 수행을 치르며 성자라 지지받았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권력에 관여한 인물들이에요.”

 ②신권정치(神權政治)=최근 누리꾼들은 26일 KBS ‘역사저널 그날’의 패널로 잘 알려진 최태성 교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쓴 글에 주목했다. 전문을 소개한다.

 “신석기 시대부터 등장한 샤머니즘은 초자연적 존재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무당 중심의 종교입니다. 이 무당이 정치권력마저 장악하는 사회를 제정일치사회라고 합니다. 청동기 단군왕검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반만 년 전 이야기입니다.”

 쉽게 말해 영화 ‘300’(2006년)에서 “나는 관대하다”고 되뇌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제도란 얘기다. 굳이 찾자면, 16세기 칼뱅주의나 미국 식민 초기 일부 지역에 비슷한 통치 형태가 존재하긴 했다고 한다.

 하나 더. 많은 누리꾼은 ‘청동검이라도 사야 하나’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 청동은 인류 최초의 합금으로 매우 귀했다. ‘말을 타고 다니며 권세를 부리던’ 소수나 청동검을 가질 수 있었다.

 ③하야(下野)=직역하면 ‘들판으로 내려가다’. 한 한문학자는 “여기서 야(野), 들판은 민초(民草)들이 사는 땅을 뜻한다”며 “관련어로는 야인(野人), 야생(野生)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들판에서의 삶이라. ‘생물 다양성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저서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사이언스북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 본성은 자기 파괴적인가? 환경 정복과 자기 증식의 욕구는 도저히 멈출 수 없을 만큼 우리의 유전자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것일까? 나의 대답은 단호하다. 인간은 자멸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 요컨대, 의지가 있기에 희망이 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간에 인류의 대부분이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무서운 사실은 여전히 남는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세월호#라스푸틴#신돈#신권정치#하야#검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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