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실험실]중고책 매입 기준, 온라인 서점은 ‘상태’ 헌책방은 ‘가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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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는 책, 대형 온라인 서점-청계천에 팔기

일부 온라인 서점은 오프라인 중고책 매장도 운영한다. 기자는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한 대형 온라인 서점의 오프라인 중고서점에 찾아가 10여 권의 중고책 판매 방식과 가격을 알아봤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일부 온라인 서점은 오프라인 중고책 매장도 운영한다. 기자는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한 대형 온라인 서점의 오프라인 중고서점에 찾아가 10여 권의 중고책 판매 방식과 가격을 알아봤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대청소를 부르는 계절이다. 이사나 집 정리를 할 때면 손길이 가지 않는 책을 처리하고 싶어진다. 이때 찾는 게 온라인 중고서점과 헌책방. 어떻게 하면 책을 잘 팔 수 있을까. 기자가 직접 만화부터 시집과 소설, 인문·사회서, 외서 등 책 10여 권을 들고 대형 온라인 중고서점과 서울 청계천 헌책방을 찾아가 파는 실험을 해봤다. 실험 가설은 ‘편의성은 온라인, 가격은 헌책방이 좋다’라는 것이었다.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등 대형 온라인 서점이 운영하는 중고책 판매 코너로 가봤다. 먼저 책명을 검색하면 가격을 대략 추정할 수 있다. 여기서 중고책 판매를 신청하면 무료 혹은 박스당 1000∼2500원 정도의 택배비를 받고 책을 수거해 간다. 알라딘, 인터파크 등 일부 온라인 서점은 오프라인 중고 서점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모든 책을 다 팔지 못한다는 점이다. 변색, 접힘, 찢김, 얼룩, 밑줄과 부속물 포함 여부는 온라인 중고서점이 책 매입을 결정하는 중요 기준이다. A온라인 중고서점에서 기자의 소설책은 5쪽 이상 밑줄이 있다며 ‘매입 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책 상태 판정은 인간의 영역(?)이라서 실수가 있기 마련. 밑줄이 꽤 있었던 영문 여행서는 최상급 판정을 받아 3000원에 팔았다. 앤디 워홀 화집은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이 없다며, 역대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소설과 최근 개정판이 나온 인문서, 백석 시집 등은 재고량 초과라며 거부당했다. A서점 직원은 “책 매입 여부는 컴퓨터에 설정된 프로그램과 매뉴얼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로 나갔다. 이곳 22개 헌책방의 기준은 온라인 서점과 달랐다. 대부분 책의 상태보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밑줄이 있거나 조금 찢긴 책도 수요자가 확실히 있을 것으로 예상되면 매입했다. 특히 절판된 책은 가치가 높았다. 예를 들면 법정 스님의 유언에 따라 절판된 스님 책은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ISBN이 없는 ‘은하영웅전설’ 구간 세트는 고가에 거래되는 책 중 하나다. 2대째 중고서점을 운영하는 상현서림의 이응복 사장은 “온라인 서점에 매뉴얼이 있다면 우리한텐 ‘짬밥’이 있다”고 했다.

다만 책이 너무 많으면 보관하기 힘들기 때문에 청계천 헌책방 역시 모든 책을 매입하지는 않았다. 특히 베스트셀러나 최신 정보가 빠진 여행 책은 대부분 매입을 꺼렸다. 또 시리즈 책은 낱권보단 세트를 선호했다. 그러나 서점마다 고객층이 달라서 한 서점에서 거부당한 책을 다른 서점이 반기는 사례도 있다. 그 예로 한 미술서적 전문 서점은 3곳에서 퇴짜 맞은 화집을 5000원에 사겠다고 했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 현만수 평화시장서점연합회장은 “중고책의 매입가나 판매가 모두 알고 보면 우리가 온라인보다 훨씬 낫다”고 자부했다.

실험 결과 편의성은 온라인이, 가격은 헌책방이 좋다는 가설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각각의 약점도 있었다. 온라인에서 매입 불가 판정을 받은 책은 택배비를 내고 다시 돌려받아야 하는데 이건 배보다 배꼽이 클 수도 있다. 또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은 헌책방 매입가가 온라인보다 낮게 책정되는 등 책에 따라 헌책방이 가격 면에서 꼭 좋다고는 볼 수 없었다. 책을 정리하는 제3의 길도 있다. 인터넷에 있는 중고책 오픈마켓에서 판매자로 등록해 팔 수 있다. 중고책 판매가 번거롭고 큰돈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기부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책을 기부하면 연말정산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중고책#온라인 서점#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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