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조현일]시골에선 누구나 맥가이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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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일
동결심도는 지반에서 동상 현상이 미치지 못하는 땅의 깊이를 나타낸다. 겨울철 건축물을 세울 때 동결심도까지 땅을 파서 건축 토대를 앉힌다. 제주의 동결심도는 0cm다. 이것은 제주의 한겨울 날씨에도 지표면이 얼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요즘 제주의 날씨는 동결심도가 0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한파가 오고 우리 집을 비롯해 이웃집의 노출 수도관이 얼어 물을 쓸 수 없는 날이 많아졌다. 스팀해빙기와 파이프 연결 부속품을 가지고 우리 집은 물론이고 인근 형님들의 집에 언 수도관을 수리하러 갈 때가 많다.

동네 형님에게 연락이 온다. 집 안의 전기가 나갔다며 이상 유무를 확인해 달라고 한다. 테스터기와 몇 가지 공구를 가지고 형님 내외분과 커피를 한잔하고 전기회로를 점검한다. 전기선 위에 아무 생각 없이 박아놓은 나사못 하나가 전선을 뚫어 합선이 일어난 것이다. 전선을 제거하고 새 선으로 삽입해 문제를 해결했다.

시골생활에서 웬만한 집수리는 스스로 해야 한다. 금이 간 타일 한 장을 붙이거나 간단한 전선을 손보는 데에도 사람을 부르면 기본 반나절 일당은 지급해야 한다. 또 돈이 안 되는 소소한 일에는 기술자들이 오지도 않는다. 시골에서 생활하기 위해선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많고 배워야 하는 것도 많다.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면 결국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시골에서는 돈으로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 불편할 때도 허다하다.

집 안의 소소한 것을 수리하는 데 전문가적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지는 않다. 인터넷을 검색해 공부하고 몇 가지 장비를 구입해 연습하면 자기 집을 수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 돈독한 사이를 유지할 수도 있다.

서울에서 입시학원만 20년을 운영하며 수학을 가르쳐 왔으니 집을 짓거나 수리하는 기술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요즘 3일 정도면 웬만한 전기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도 있고 목조주택을 짓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도 많다.

1980년대 국내에 방영됐던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에서는 주인공이 주변 재료로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어 사람을 구하고 위기에서 탈출했다. 시골에선 맥가이버가 돼야 좀 더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간단한 보일러 수리를 받으려고 3개월이나 기다리다 겨울 동안 아예 난방을 하지 못한 이웃도 있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보고 다양한 정보를 얻어 스스로 하면 굳이 전문가를 부르지 않아도 대부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 집 근처에는 70세가 가깝지만 자신이 직접 집을 짓고 싶다며 우리 건축 현장을 오가며 여러 가지를 배우는 형님도 있다. 많은 나이에도 건축 기초부터 전기, 타일, 마감까지 부지런히 배운다. 가끔 나도 모르는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놀라게 한다. 도시, 사회, 조직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며 행동하던 그 열정을 약간만 할애해도 누구나 귀촌 시골생활에서 훌륭한 맥가이버가 될 수 있다.
 
조현일

※필자는 서울, 인천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다 2년 전 제주로 이주해 여행 숙박 관련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동결심도#제주도#시골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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