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백의 발상의 전환]<27>화약 폭발로 그린 도시의 폐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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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인류의 문명과 산업 발달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물질문명의 급격한 발달은 환경오염을 가져오기에 우리는 언젠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지구를 상상한다. 우리 눈에 친숙한 도시가 폐허로 바뀐 모습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더 큰 충격은 내가 거기에 없다는 사실이다.

차이궈창(蔡國强)은 화약을 재료로 쓰는 것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 ‘우리가 없는 와이탄 Bund without us’(2014년·그림)는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PSA) 1층 로비에서 길이 27m, 높이 4m의 특수 제작한 종이에 화약을 터뜨려서 만든 작품이다.

폭발 당일 차이궈창과 지원자들이 그 종이 위에 하드보드지를 올리자, 장갑을 낀 작가가 강약을 조절하며 화약을 배치하고 촉매를 덮었다. 여기에 다시 하드보드지를 덮은 후 그 위를 돌로 눌러 압력을 높였다. 드디어 작가가 불을 붙이자 ‘팍팍’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작품은 순식간에 연무에 휩싸였다. 곧이어 회화의 전모가 드러났다.

화약의 폭발 흔적으로 만들어진 상하이 와이탄의 풍광은 몽환적이다. 차이궈창은 인류가 소멸된 후 대자연에 맡겨진 도시를 상상하여 작품을 구성했다. 거대한 두루마리에 폭발을 통해 드러난 화약회화는 도로가 밀림에 점령당하고, 빌딩들이 덩굴과 줄기들에 싸여 폐허가 된 장면을 나타냈다. 자연으로 반환된 대도시 한복판에 각종 생물이 공존하는 원시적 장면이다. 양쯔 강의 악어가 황푸 강변에 올라오고, 다람쥐와 원숭이는 식물들로 뒤덮인 건물의 문과 창문 사이를 오간다.

차이궈창의 ‘우리가 없는 와이탄’은 환경오염에 대한 비판과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세계의 공장’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급격한 산업 발달과 환경오염에 대한 자기반성을 촉구한다.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미술관에서 폭발이라는 가장 환경파괴적인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화약재가 남긴 검은 자취는 인류 물질문명의 소멸을 나타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번진 실루엣이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수묵 산수화와 유사하다.

이 작품은 퍼포먼스가 만들어낸 회화란 점에서 기발하다. 뉴욕에서 작업하는 중국 태생의 작가 차이궈창은 자국의 4대 발명품 중 하나인 화약을 이용해 중국 전통화를 재현한다. 그의 작품을 보며,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것은 자기만이 갖고 있는 문화적 보고(寶庫)란 점을 새삼 확인한다.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미술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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