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하와이 해변의 걸인들, 한때 중산층이었을 그들에게 무슨 일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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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산층 현장보고서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반도의 어부의 부두(Fisherman′s Wharf) 옆 해수욕장 무료급식 현장에서 길게 줄을 선 노숙인들. 지난달 필자가 촬영한 것이다. 백인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반도의 어부의 부두(Fisherman′s Wharf) 옆 해수욕장 무료급식 현장에서 길게 줄을 선 노숙인들. 지난달 필자가 촬영한 것이다. 백인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장면 1.

2013년 2월 중순.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 비치. 해가 떨어지자마자 수많은 노숙인이 행인들이 다니는 보도와 백사장에 자리를 펴고 눕는다.

#장면 2.

2014년 6월 초순.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반도. 풍광 좋기로 소문난 ‘17마일 드라이브’가 시작되는 초입에 있는 ‘어부의 부두(Fisherman's Wharf)’에 노숙인 100여 명이 남루한 행색으로 무료 배식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위의 장면들은 모두 필자가 작년과 올해 직접 본 것들이다. 필자에겐 모두 충격적인 장면들이라 뇌리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독자들 중에서는 왜 그게 충격적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걸인과 노숙인은 어디나 있을 법한데 무슨 대수이냐면서 말이다.

먼저, 과거에는 위에 언급한 장소에서 걸인이나 노숙인들을 전혀 볼 수 없었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하와이 와이키키와 캘리포니아의 몬터레이는 세계적인 관광지여서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감독이 매우 철저했던 곳이다. 대부분 주민들이 관광 수입으로만 먹고사는 곳인데 그런 곳에 걸인이나 노숙인들이 어슬렁거리며 구걸을 한다면 관광객들이 오겠는가.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것이 원래 이런 지역 관청이 지닌 마인드 아니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숙인과 걸인들이 진을 쳤다는 것은 소관 부처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수가 늘었거나, 관할 기관의 예산과 인력이 축소되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 분명하다.

와이키키 해변과 몬터레이의 변화에서 필자가 충격을 받은 또 다른 이유는 순전히 개인사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 필자는 미국에서 2008년에 발발한 금융위기의 원인과 그 영향을 짚어보는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란 책을 3년 전 펴낸 바 있다. 그 책 서두에서 금융위기 이후 열악한 재정 문제에 직면한 주 정부들이 관리하는 데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부랑인들을 편도 기차나 비행기에 태워 다른 주로 쫓아내는 방식으로 골칫거리를 방출한다는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그 이야기에 등장한 것이 바로 편도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로 보내져 북쪽 해안가에서 따로 격리된 채 텐트촌을 이루며 사는 미국의 노숙인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실토하건대, 필자도 그 소식을 미국 유수 신문을 통해 접하고 책에 자료로 사용하면서도 미국에서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솔직히 긴가민가했다. 책을 쓸 당시만 하더라도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책이 발간되고 2년이 지난 뒤 직접 하와이를 방문했을 때 오아후 섬 북쪽 해안가 텐트촌은 물론이고 아예 관광객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와이키키 해변에서조차 많은 노숙인이 잠을 청하고 있는 것을 직접 보았으니 충격을 받을 수밖에.

게다가 이때는 이미 미국 정부가 전미경제조사국(NBER)을 통해 경기침체가 2009년 6월을 기해 종료되었음을 공식 선언한 이후였다.

필자가 앞서 말한 두 장면을 뇌리에서 떨쳐 버릴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들이 머무는 바로 그곳에서 이들과는 전혀 딴판의 삶을 사는 이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와이만 하더라도 미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그곳을 방문하는 미국인이라면 상당히 여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와이키키 해안가의 특급호텔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몬터레이 반도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대회가 열리는 페블비치 등 그야말로 꿈의 골프장이 여러 개 있고 그곳 리조트 바에선 병당 100만 원이 넘는 와인이 수월찮게 팔리는, 그야말로 있는 자들의 향연이 날마다 흥청망청 벌어지는 그런 곳이다.

바로 그런 곳 초입에 공짜 빵과 국이 간절해 줄을 선 배곯은 노숙인들의 행렬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노숙인들과 리조트 고객들 사이에는 우리 돈으로 1만 원을 받고 진입을 허용하는 경비소가 서 있다. 1만 원이 없으면 그곳의 진입을 허용조차 못 받고 철저히 차단되는 곳, 그곳이 바로 몬터레이 반도의 꿈의 도로 ‘17마일 드라이브’ 길이다.

이런 대비가 더욱 선명해질 뿐만 아니라 안타까운 이유는 그 두 곳의 걸인과 노숙인들이 애초부터 부랑인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다소 근거 있는 추정 때문이다. 필자는 앞서 언급한 책에서 미국의 실업률과 빈곤율 수치가 거의 같다는 이유를 들어 미국인들은 만일 실직할 경우 대번에 빈곤에 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이는 저축이 없이 가불경제 체제하에 살아가고 있는 미국인들의 처량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위 두 곳에서 목격한 노숙인 중 상당수는 과거 어느 시점에서는 여타 다른 평범한 이들과 비슷하게 미국 중산층 또는 서민의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이라고 어렵지 않게 추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금융위기 발발 이후 5∼6년이 지난 이후 미국 정부는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는데 미국은 과연 기사회생하고 있는 것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필자는 매우 회의적이다.

미국 상황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으며, 오히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던 미국 중산층의 두께는 갈수록 얇아져 가고 있고 그나마 남아있는 중산층의 삶조차 언제 어느 때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게 팍팍해져 가고 있다. 반면 극소수 부자들의 배는 점점 더 불러 가고 있는, 이른바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심화되어 가고 있다.

다음 회부터 풀어갈 이야기는 바로 물이 가득 차올랐던 만조(滿潮)에서 이제는 물이 빠지는 간조(干潮) 시대로 향해 가는 미국, 그 확연히 기울어가는 미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회학자가 꼼꼼하게 작성하는 일종의 현장 보고서이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미국#노숙인#무료 배식#실업률#빈곤율#중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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