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재구성]드라마 ‘기황후’서 고려왕이 元신하들에게 핍박받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부마국으로 각별히 대우… 제국 중 유일하게 식량도 원조

MBC 사극 ‘기황후’에서 고려왕에서 폐위된 뒤 원제국의 신하들에게 온갖 수모를 겪는 왕유 역의 주진모. MBC 제공
MBC 사극 ‘기황후’에서 고려왕에서 폐위된 뒤 원제국의 신하들에게 온갖 수모를 겪는 왕유 역의 주진모. MBC 제공
MBC 월화 드라마 ‘기황후’에는 고려 국왕 왕유(주진오)가 몽골제국인 원나라의 신하들에게 능멸당하는 장면이 숱하게 등장한다. 이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원제국이 훗날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본국처럼 안하무인으로 행동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오해와 억측의 산물이다. 여진족의 금, 거란족의 요와 마찬가지로 몽골족의 원도 고려를 ‘형제의 나라’로 여겼다. 고려가 복속을 거부하자 원정을 펼치긴 했지만 다른 정복국에 비해선 사정을 많이 봐줬다. 몽골은 세계 정복 과정에서 항복을 거부한 나라에 대해선 전 유럽을 떨게 만든 살육전을 펼쳤다. 반면 40년간 대몽 항쟁을 펼친 고려에 대해선 왕실을 보존시켰을 뿐 아니라 원 세조(쿠빌라이)가 가장 아끼던 막내딸(제국대장공주)을 세자 신분이던 고려 충렬왕에게 시집보냈다. 이 결혼을 포함해 이후 충(忠)자 항렬 왕과 공민왕까지 7명의 고려왕이 몽골 공주와 결혼한 것은 원의 강요가 아니라 고려 왕실의 요청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다.

고려 왕실은 이를 통해 많은 것을 얻어 냈다. 우선 왕권을 위협하던 무신 세력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게 됐다. 또 원 황실의 부마국이 됨으로써 원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외교적 위상을 한껏 높일 수 있었다. 원제국의 조정에서 몽골족을 제외하곤 티베트와 고려가 가장 높은 대접을 받았다. 티베트는 원제국의 국교가 된 라마교 국사(國師)를 배출한 나라라면 고려는 원 황실과 가장 가까운 종친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실제 원 황제의 즉위식이나 장례식에서 고려 왕의 서열은 10위 안에 들었다. 그러다 보니 세계 제국인 원 내부 권력 게임에 직접 참여하는 사례도 있었다. 원의 수도 대도에 만권당을 설치한 것으로 유명한 충선왕은 실제 원 무종을 황제에 옹립한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뿐만 아니다. 원은 중원 대륙을 차지한 제국 중 거의 유일하게 대량의 식량을 원조한 나라다. 고려사를 보면 고려 원종 15년(1274년)엔 2만 석, 충렬왕 17년(1291년)에는 10만 석의 쌀을 지원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고려 내정을 간섭하기 위해 파견한 다루가치의 횡포도 초창기에는 심했을지 모르지만 원과 고려가 결혼 동맹을 맺은 뒤부터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고려사를 보면 원 황제의 칙사가 고려 왕에게 절을 하지 않는 다루가치를 보고 “왕은 천자의 부마인데 늙은 놈이 어찌 감히 이같이 무례하게 행동하느냐”고 엄하게 꾸짖는 장면이 등장한다. 오히려 원의 순제와 결혼한 기황후 외척들의 발호가 더 심각했다.

고려가 원제국의 무력 침략에 굴복해 복속국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제강점기의 조선을 연상해선 안 된다. 오랑캐의 나라라고 원을 배격하고 한족이 세운 명을 지지했던 조선 사대부들의 봉건적 역사관에서 탈피해 고려의 주체적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자료: ‘고려사’, ‘고려사절요’, ‘원사’, ‘대쥬신을 찾아서’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고려#부마국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