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석의 좌충우돌 육아일기]육아 고수와 하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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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남자들이 몸으로 아이를 낳지는 않지만 출산과 육아는 남자들의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눈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결혼 전에는 유모차 바퀴가 2개인지 4개인지 관심도 없었지만 아이 셋을 키워 내는 아빠가 되자 이제는 저 멀리서 봐도 한눈에 척 어떤 브랜드의 유모차인지 그 특징은 무엇인지 척척 구분한다.

아기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이 생긴 뒤부터는 아기와 함께 가는 아빠들의 모습도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는다. 어떤 유모차를 끄는 아빠인지 어떤 아기띠를 메고 있는 아빠인지를 보면 대충 저 아빠의 육아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같은 남자로서 비교하게 되고 보게 되는 눈이 생긴 것. 그래서 이제 보면 ‘오호∼ 저 아저씨 육아 고수인데’, ‘에이, 저 아빠는 아직 더 많이 배워야겠네’ 하는 느낌이 팍 온다. 즉 고수와 하수가 있다.

○ 대포 DSLR 카메라 아빠

화창한 봄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돗자리와 간단한 피크닉 가방을 들고 가까운 공원 잔디밭으로 나가는 가족 소풍. 이때 아이의 행복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놓고자 고성능 렌즈로 무장한 대포 같은 DSLR 카메라를 들고 오는 아빠. 아무리 봐도 육아 하수다.

일단 아이를 안아 줄 양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아이를 쉽게 안아 주기도 어렵다. 좋은 구도와 사진을 찍기 위해 아이와 엄마를 멀찌감치 피사체로 놓고 자신은 한 걸음 물러나 사진만 찍어 댄다. 옆에서 아이 챙기랴 아이 포즈 챙기랴 엄마만 고생하기 쉽다.

물론 아이들의 예쁜 사진을 많이 찍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이라면 사진은 몇 장 안 될지라도 그 순간 순간 아이와 붙어서 안아 주고 손잡아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 트랜스포머 탱크 유모차 아빠

배냇저고리, 손수건, 짱구베개, 기저귀, 유축기 등 대부분의 출산 준비물은 엄마가 주도적으로 고르겠지만 그중에서 아빠의 입김과 관심이 가장 많이 가는 품목은 유모차다. 인터넷이든 오프라인 매장이든 유모차를 고르러 가 보면 아빠들에게는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신기하고 놀라운 세상이 펼쳐진다.

이리저리 몇 번 척척 접는 것으로 커다란 유모차가 트랜스포머 변신 로봇처럼 작게 변하고, 탱크 포탑이 빙글빙글 회전하듯이 유모차의 아기 바구니가 360도 회전하는 유모차를 보게 되면 욕심이 나기 시작한다. 유모차가 카시트도 되는 하이브리드 유모차를 보게 되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결국 소형차 트렁크에 들어가지도 않는 대형 유모차를 고르는 아빠들이 많다. 그런 큰 유모차를 끌고 백화점이라도 나가면 아빠는 기세등등, 어깨는 으쓱으쓱. 하지만 아빠가 출근하고 엄마 혼자 그 대형 유모차를 차에서 꺼낼라치면 중노동도 이런 중노동이 없다. 유모차를 아빠의 근력이 아니라 엄마의 근력과 눈높이를 고려해 고르는 당신은 육아 고단수!

○ 놀이터 벤치족 아빠

주말이 되면 아빠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다. 한 주 동안 아이들한테 시달린 엄마에게 짧지만 자유시간을 좀 주고자 배려한 것이리라. 동네 놀이터에 나가 보면 대부분 비슷한 처지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아빠들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그네도 밀어 주고 시소도 태워 주다가 어느 순간 하나둘씩 놀이터 벤치로 모여든다.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스포츠 중계도 보면서 힐끔힐끔 아이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벤치족 아빠들.

아빠를 귀찮게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친구 해서 놀기라도 하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아아! 아이들을 쫓아다니기엔 역부족인 저질 체력의 아빠들. 그런 우린 육아 하수. 30분을 놀더라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는 것이 좋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따라가지 못하니 아쉬울 뿐이다.

○ 무림의 고수, 아이를 등에 업은 아빠

아무리 아이를 사랑해도 아빠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행동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를 등으로 업어주는 것. 예전 아버지 세대야 아이를 안아 주는 것 자체를 남자답지 못하다고 금기시했지만 요즘 아빠들은 그런 편견 없이 엄마 이상으로 아이들을 잘 안아 주고 받아 준다.

하지만 여전히 등에 업고 다니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지금 밖으로 나가서 아이를 안고 있는 아빠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엄마들도 요즘 앞으로 안는 것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아빠들은 백이면 백 모두 앞으로 안고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앞으로 안아 주면 ‘친근한 아빠’ 이미지가 나지만 뒤로 업어 주면 왠지 ‘전업주부 아빠’ 더 나아가 ‘집에서 노는 아빠’ ‘무능한 아빠’의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심리적인 이유로 아이를 등에 업는 것이 아무리 편하더라도 좀 꺼리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마트에서 아이를 등에 업고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아내와 함께 장을 보는 아빠를 간혹 보게 되는데 그 아빠의 당당함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숙여진다. 속된 말로 ‘육아의 갑’이라고나 할까.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깊고 얕음은 없다. 다만 육아가 서투르고 어디서 가르쳐 주는 곳도 없으니 표현방법이 좀 다를 뿐이다. 그래도 좀 더 배우고 노력한다면 아이들도 아빠의 사랑을 더욱 각별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경석 광고기획자

※ ‘김지하와 그의 시대’ 연재로 올 4월부터 중단됐던 ‘이경석의 좌충우돌 육아일기’를 다시 연재합니다. 필자는 광고업계에서 일하는 30대 중반의 광고기획자(AE)입니다. 시험관 시술로 딸 셋을 얻은 다둥이 가족의 가장이기도 합니다. 맞벌이 부부라 ‘반강제적’으로 육아 일선으로 몰렸다는 그, 대한민국 평범한 월급쟁이 아빠들의 이야기를 펼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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