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문화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거슈윈과 ‘오케이’

입력 2018-09-18 03:00업데이트 2018-09-18 03:00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작곡가 조지 거슈윈(오른쪽)과 케이 스위프트.
“오, 케이! 너는 나하고 오케이야! 사랑스러운 너! 들어봐. 비너스도 너와는 비교가 안 될 거야….”

미국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조지 거슈윈(1898∼1937)의 뮤지컬 ‘오케이’(1926년)의 가사입니다. 이 작품에서 ‘오케이’는 ‘좋다, 문제없다’는 ‘OK’를 뜻하기도 하지만, 케이라는 여성을 부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케이는 거슈윈의 연인이었던 연상의 여성 작곡가 케이 스위프트(1897∼1993)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음악사에는 ‘최초로 (뮤지컬 삽입 노래가 아니라) 전작(全作) 뮤지컬을 완성한 여성 작곡가’로 기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케이는 어딘가 쓸쓸했던 거슈윈의 사랑을 상징하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정통 클래식 교육을 받았지만 미국 대중음악 스타일을 가미한 거슈윈의 음악에 빨려들었고, 거슈윈과 친해졌습니다. 이름도 본래 이름인 캐서린에서 거슈윈이 자기를 부르는 ‘케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케이에게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뮤지컬 ‘오케이’의 남자 주인공과 같은 이름인 지미였죠. 지미는 아내와 거슈윈이 가까워지는 것을 알면서도 재능 있는 두 음악가의 사랑을 존중했고 이혼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거슈윈은 케이와의 결혼을 미뤘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유대인인 거슈윈과 비유대인인 케이의 결합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언젠가 두 사람이 부부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거슈윈은 39세에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뇌에 종양이 자라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수술에는 별문제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거슈윈은 수술 중 갑자기 숨을 거두었습니다. 케이는 슬픔에 빠졌지만 딛고 일어나 거슈윈의 형인 작사가 아이라와 함께 거슈윈의 유작을 정리해 발표했습니다.

다음 주 연휴 마지막 날인 26일은 조지 거슈윈의 탄생 120주년 기념일입니다. 그가 그렇게 오래전 사람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칩니다. 그와 사랑을 나눴던 연상의 케이도 사반세기 전까지 이 지상에 있었으니까요. 오늘은 거슈윈의 ‘오케이’를 들으면서 만사 오케이는 아니었던 그의 짧은 삶을 생각해 보려 합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