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44·끝>새해 소망

  • Array
  • 입력 2013년 1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박세당(朴世堂·1629∼1703)은 절조가 매운 선비입니다. 수락산(水落山) 서쪽 오늘날의 장암역 인근 석천동(石泉洞)에서 꼿꼿하게 살면서 스스로를 서계초수(西溪樵수), 곧 서쪽 개울의 나무꾼이라 불렀습니다. 물가에 집을 지을 때 울타리를 치지 않고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배나무, 밤나무를 집 주위에 둘러 심었으며 오이를 심고 밭을 개간하고 땔감을 팔아 생활하였습니다. 농사철에는 늘 밭에서 지냈으며, 가래를 메고 쟁기를 진 농부들과 어울려 다니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지은 묘표(墓表)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며 합치되는 바가 없이 살다 죽을지언정,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 세상에 맞춰 살면서 남들이 선하다고 해 주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는 자’에게 끝내 고개 숙이고 마음을 낮추지 않겠다고 생각하였으니, 이는 그 뜻이 그러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고결한 선비정신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선비의 마음은 자신의 고결함뿐만 아니라 시대의 태평성사를 축원합니다. 앞에 소개한 춘첩자(春帖子)는 석천동에 은거하던 시절에 지은 작품입니다. 들판에는 곡식과 과일이 잘 익어 태평시대를 누리기를 축원하였고, 사람들이 모두 부자가 되어 행복한 노래가 울려 퍼지기를 축원하였으며, 집집마다 곡식이 광에 넘쳐나고 옷이 옷장에 그득하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이 박세당이 바란 새해 소원이었고, 또 올해 모든 사람이 바라는 소원일 것입니다.

※필자 사정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새해 소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