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39>새해 달력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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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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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동짓날이면 관상감(觀象監)에서 새해 책력(冊曆)을 제작하여 관리들에게 넉넉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를 받은 관리들은 아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보내곤 하였지요. 책력은 지금의 달력과 유사한데 농사나 택일 등에 필요한 내용 등이 두루 기록되어 있어 일상생활에 요긴했습니다. 이정형(李廷馨·1549∼1607)이라는 분은 세밑에 책력을 받으면 거기다가 시를 썼습니다. 이 작품은 불혹(不惑)의 나이를 바라보던 1587년 쓴 것입니다. 이 무렵 사헌부와 사간원 등에서 요직을 맡고 있었으니 전도양양하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우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말하고 부모님이 무탈하고 형제와 함께 살 수 있기를 바랐으며, 즐거운 자신의 삶이 지속되기를 바랐습니다.

이정형은 최소한 34세 때부터 해마다 책력에 시를 썼는데 그의 문집에 이런 시가 11수가 남아 있습니다. 1606년 동지 무렵 생의 마지막 책력을 보고 쓴 시도 읽을 만합니다. “눈 어둡고 귀먹어 백발이 새로운데, 오순에도 늙었는데 육순은 어떠하랴. 혈기가 쇠했으면 물욕을 경계하라는 성현의 유훈을 다시 허리띠에 적노라(眼暗耳聾白髮新 五旬已老황六旬 血氣旣衰戒之得 聖師遺訓更書紳)”라고 하였습니다. ‘논어’에서 군자가 경계할 세 가지를 들었는데 청년기에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성욕을 경계하고, 장년기에는 혈기가 왕성하므로 승부욕을 경계해야 하며, 노년기에는 혈기가 쇠약해지므로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정형이 이때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이기에 책력에다 노탐(老貪)을 경계하는 글을 썼던 것입니다. 새해 달력을 보시고 그 각오를 적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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