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36>시아버지의 따뜻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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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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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있는 집에서는 좋은 며느리 들이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 자식에게 잘해 주고 혹 여력이 있어 시부모까지 잘 받들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그러자면 며느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19세기 경상도 밀양에 살던 이제영(李濟永·1799∼1871)이라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시인은 며느리를 들이고 나서 사돈에게 위와 같은 시를 지어 딸을 보내준 사돈을 위로했습니다. 고된 노동에 며느리는 새벽잠이 많고 시어머니는 나이가 들어 초저녁부터 꾸벅꾸벅 존다고 고부간에 티격태격합니다. 시아버지께 어느 것이 나은지 따져 물었더니, 시아버지는 늙은 아내를 편듭니다. 그리고 슬쩍 자신의 늦잠도 옹호합니다. 얄밉지만 가족 사이에 이런 대화가 있기에 훈훈합니다.

예전 며느리들은 늘 잠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작품에서도 ‘다정하게도 석 달 내리 비가 계속 내리면, 한 달은 머리 빗고 한 달은 잠만 잘 텐데(多情三月長長雨 一月梳頭一月眠)’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연작시로 된 이 시의 첫째 작품에서는 ‘종일 푸른 산에서 고사리를 캐서 돌아오니, 달 걸린 절구통에 새벽 노래가 서늘하네. 이웃집 뿔 굽은 암소가 훨씬 부럽구나, 그래도 밤이 되면 한 번쯤은 한가함을 얻으니(盡日靑山採蕨還 月懸용杵曉歌寒 多羨隣家曲角* 夜來猶得一番閒)’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한밤에 휴식을 취하는 소가 부럽다는 말이 나올까,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이를 이해해 주는 이제영 시인 같은 시부모가 있다면 다행입니다. 며느리를 맞아야 할 집이라면 이런 마음을 배워볼 만합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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