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35>걱정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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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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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은 설이나 입춘(立春)을 맞으면 춘첩자(春帖子)라고 하는 시를 지어 문에다 붙이고 한 해의 길상(吉祥)을 축원하였습니다. 설이나 입춘이 멀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맞을 때인지라, 개인이 아닌 만백성의 행복을 축원한 김안국(金安國·1478∼1543)의 춘첩자를 소개합니다. 김안국은 여민동락(與民同樂)의 꿈을 꾼 사림(士林)의 선비입니다. 백성은 굶주려 죽을 날만 기다리는데 혼자 따뜻한 옷을 입고 배불리 밥을 먹는 것은 선비의 도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김안국은 벼슬에서 물러난 야인의 몸이었지만 1530년 새해를 맞으면서 조선 팔도에 풍년의 풍악 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좀 더 자세한 축원을 원한다면 산청현감으로 내려가 있던 남공철(南公轍)이 1788년 설날에 쓴 ‘한 해를 기원하는 노래(祈歲詞)’에서 한 대목을 권합니다.

“내 원하는 바 그저 집집마다 늘 풍족한 것, 남자는 추위에 여자는 굶주림에 울지 않기를. 빈 배로 장사 나간 이는 만선으로 돌아오고, 큰 소는 송아지 끌고 닭은 병아리 먹이 주기를. 보리 싹은 두 갈래로 패고 벼는 일찍 익을 것이며, 면화는 광주리에 수북하고 누에는 방에 가득하기를. 가을에 추수하여 관아에서 꾼 곡식을 갚고, 세금 내고 나면 치마나 버선을 장만할 수 있기를. 한 해 내내 아전이 문을 두드리지 않고, 길거리가 조용하여 개가 짖는 일 없기를(但願家家長富足 男不啼寒女不飢 輕舟作商重船歸 大*引犢계哺兒 麥穗兩기稻早熟 拾綿盈筐蠶滿室 秋來及期償官租 賦餘將取作裙襪 終年不見吏剝門 巷閭安閒狗不驚)”

모든 사람이 풍족하고 도둑 걱정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 오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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