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29>불면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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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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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연간의 문인 조태채(趙泰采)는 ‘노쇠함을 탄식하며(歎衰)’라는 시에서 ‘병든 치아 있은들 몇 개나 되겠는가? 시든 백발 나날이 빠지니 몇 가닥 남았나? 앉으면 늘 졸음이 쏟아져 잠 생각만 간절하고, 일어날 때 허리 짚고 아이쿠 소리를 지른다(病齒時存凡幾箇 衰毛日落許多莖 坐常垂首惟眠意 起輒扶腰自痛聲)’라고 하였습니다. 나이가 든 분이라면 이 구절에 절로 공감이 갈 겁니다. 또 19세기 전후한 시기의 문인 이복기(李福基)는 ‘노년이라 잠자는 일이 잘 되지 않아, 초저녁엔 꾸벅꾸벅 깊은 밤엔 말똥말똥(老年寢事未全成 初夜昏昏後夜淸)’이라 하였는데, 낮에는 늘 꾸벅꾸벅 졸다가 정작 남들이 다 자는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역시 피해갈 수 없는 노화 현상입니다.

정칙(鄭칙·1601∼1663)이라는 문인은 노년에 불면의 밤을 자주 보냈습니다. 잠을 이룰 수 없어 등잔불을 껐다 켜기를 몇 번이나 반복합니다. 옆방에서 편히 코를 골고 자는 하인이 얄미워서 시킬 일도 없으면서 괜스레 불러 깨워봅니다. 그렇게 뒤척이다 어느새 새벽 닭 울음소리가 들리고 창이 훤해집니다.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습니다. 이 분은 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비슷한 제목의 시를 지었는데 ‘늘그막에 한가하여 일이 없기에, 세월이 오고 가는 것 살펴보노라. 창문 하나 밝았다 어두워지는 사이에, 그저 백년 인생 바삐 감을 알겠네(老去閒無事 光陰閱往來 一窓明暗裏 惟覺百年催)’라 하였습니다. 누워서 멍하게 창밖을 내다보는 그의 쓸쓸한 눈길이 느껴져 서글퍼집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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