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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독서人]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잡학의 시대라도 뭘 알아야 융합능력 생깁니다”

입력 2012-04-07 03:00업데이트 2012-05-0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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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多讀)을 하는 ‘독서인’ 이원복 교수는 내년 초 선보일 ‘먼 나라 이웃 나라’ 시리즈의 완결 편인 스페인 편 집필에 한창이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975년 독일 유학길에 오른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66)는 짐을 풀자마자 프랑스 파리로 달려갔다. 유럽에 왔으니 먼저 문화의 도시인 파리를 보고 싶었다. 시내 대형서점에 들어서자 진열대 한복판에 소설도 시집도 아닌 만화책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올 컬러 양장본’으로 된 고급스러운 만화책이….

당시 한국에서 만화는 ‘불량’을 상징했다. 어린이날이면 ‘불량만화 화형식’이 치러졌다. 청년 이원복에게 만화란 어두컴컴한 만화가게에서 라면 끓여 먹으며 몰래 보던 하위문화일 뿐이었다. 그날 파리 서점에서 만난 만화책 ‘아스테릭스’는 3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돼 수억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아스테릭스 캐릭터는 미국의 미키마우스만큼이나 프랑스에서 국민적 인기를 끌었다.

“만화가 프랑스 대중문화의 자존심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언젠가는 한국에도 만화의 시대가 오리라는 걸 직감했죠.”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작업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당시의 ‘충격’을 이렇게 회상했다.

“아스테릭스는 독일 대학에서 프랑스어 교재로 쓰일 정도로 문장이 정제돼 있고, 풍자와 해학도 일품이었어요. 벨기에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나라별 이야기를 시리즈로 풀어나간 점도 신선했죠. 이 만화를 통해 유럽인의 사고방식과 문화코드를 배운 것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아스테릭스는 이 교수를 만화계로 이끌었고, 25년간 약 1400만 부가 팔린 그의 스테디셀러 ‘먼 나라 이웃 나라’의 기획에 영감을 줬다.

‘먼 나라 이웃 나라’ 스토리 구성의 밑거름이 된 건 그가 초등학교 때부터 수십 번 읽은 통속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었다. 1950년대 ‘암굴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나온 이 소설을 읽자마자 그는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제가 읽은 그 어떤 소설보다 이야기 구조가 완벽해요. 어마어마한 서사 구조 안에서도 수많은 복선을 깔고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등 이야기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하고 교묘하게 엮어져 있어요. 스토리텔링의 기교를 배웠죠.”

이 교수는 복수극인 ‘몬테크리스토 백작’에 열광한 데 대해 “커서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뭔가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6·25전쟁과 가난 등 원망할 대상조차 없는 사회적 환경에 억울함을 품었나 봐요. 어린 마음에 주인공의 복수를 통해 간접적인 카타르시스를 느꼈죠. 복수를 끝낸 주인공이 허무하게 느껴지면서 남을 미워해선 안 된다는 교훈도 배웠고요.”

그는 평소 추리소설을 읽을 때 말고는 주로 집필을 위한 자료 수집 차원에서 독서를 하는 데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는다. 와인 입문용 교양 만화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전2권·김영사)을 출간했으며 와인회사와 손잡고 자신의 이름을 붙인 와인을 선보인 와인 애호가이기도 하다.

30권이 넘는 저서를 집필해온 데다 대학과 외부 강연, 와인 관련 활동까지 눈코 뜰 새 없을 것 같은데 이 교수는 태평한 표정이었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바쁜 건 본업이 아니라 인간관계 때문이에요. 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사교모임이나 바둑, 골프 등은 절대 안 합니다. 와인도 혼자 마셔요.”

덕성여대 시각디자인학과 정년퇴임과 동시에 덕성여대 1호 석좌교수로 임명된 그는 2학기부터 교양 강좌 ‘먼 나라 이웃 나라’를 강의한다. 중앙아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를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 나라의 역사, 문화, 국민성 등 다양한 콘텐츠를 소개할 계획이다.

“제가 어릴 적엔 젊은이들이 세계문학전집 100권 정도는 읽었는데 요즘 젊은 세대는 지식의 원천이 컴퓨터와 스마트폰, TV로 제한돼 있어 아쉬워요. 이제는 패션과 공학, 생명과학과 물리, 색채와 건축 등 전혀 엉뚱해 보이는 분야를 창의적으로 조합해야 스티브 잡스처럼 성공하는 ‘잡학의 시대’예요. 아무것도 모르면 조합도 불가능하죠. 우리 학생들에게도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불평 말고 열심히 잡학을 섭렵하라고 가르칩니다.”

▼이원복 교수의 추천 도서▼

◇아스테릭스/르네 고시니·알베르 우데르조/문학과지성사(전 33권)
1959년부터 프랑스 만화잡지에 연재됐고 1961년부터 단행본이 발간된 프랑스의 대표적 만화 시리즈. 기원전 50년 프랑스인들의 조상 골족의 갈리아 마을이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가운데 아스테릭스 등 친근한 영웅들이 로마군과 싸우고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 영화, 게임, 테마파크 등으로 다양하게 재창조됐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알렉상드르 뒤마/민음사(전 5권) 등
‘삼총사’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뒤마의 1845년 작품. 젊은 선원 에드몽 단테스는 악당들의 음모로 누명을 쓰고 14년간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해 몬테크리스토 섬에 숨겨진 거액의 재물을 얻는다. 이후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이름으로 파리 사교계에 나타나 통쾌한 복수를 시작한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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