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오후 2시경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있는 EBS방송센터 라디오 부스에선 배우 강성연 씨(36)의 동화 낭독이 이어졌다.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 중 한 대목을 읽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잠시 흔들렸고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EBS FM은 ‘책 읽는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27일부터 평일 오전 10시∼오후 9시 다양한 책 낭독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강 씨는 동화와 시를 낭독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오전 10∼11시)와 ‘시 콘서트’(오전 11시∼낮 12시)의 진행을 맡았다. 이날은 시범방송을 위해 처음 녹음을 하는 날이었다.
강 씨가 꼽은 ‘내 인생의 책’ 역시 동화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였다. 어릴 적 처음 읽을 땐 어린 왕자가 사라진 게 너무 슬퍼 펑펑 울었단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책이 전하는 메시지와 느낌이 계속 달라졌다고 한다. “최근 다시 읽었을 땐 만남과 이별, 그로 인한 슬픔과 분노, 외로움 등이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만큼 초연해졌다고나 할까. 그게 더 슬프더군요.”
1996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강 씨는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드라마 ‘내 사랑 내 곁에’ ‘사랑밖에 난 몰라’ ‘덕이’, 영화 ‘왕의 남자’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어릴 적 꿈은 연기자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성악을 공부하며 음악인을 꿈꿨지만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입학하지 못했다. 당시 집안이 기울면서 비싼 레슨비가 드는 재수를 할 수도 없었다. 딸이 연기자가 되길 원했던 어머니의 바람대로 강 씨는 서울예대 방송연예과(현 방송영상과)에 입학했다.
“곧바로 공채 탤런트가 됐고 큰 작품의 주인공까지 맡았죠. 그렇게 몇 년 동안 제 의지가 아닌 채로 등 떠밀려가듯 살았어요. 스물아홉 살 땐가. 이상한 겉옷을 입고 내면에 찌꺼기만 가득 채운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저를 볼 수 있었어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만큼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 언니가 이 두 권의 책을 권했죠.”

그는 1월 재즈피아니스트 김가온 씨(36)와 결혼했다. 신혼 재미에 푹 빠져 있다는 그는 “듬직한 내 편이 생겨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올 상반기에 그가 노래를 부르고 남편 김 씨가 피아노를 치는 재즈콘서트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강 씨는 두 장의 음반을 낸 가수이기도 하다. 올해에 남편과 함께 재즈 음반도 낼 계획이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모든 여유로움은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제가 ‘인생 수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구입니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세상엔 감사할 일이 넘치지요. 그런데 동화를 큰 소리 내 읽다 보니 예쁜 아기를 낳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생겼어요. 또 다른 감사할 일도 생기면 좋겠네요. 호호.”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