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탄생 250주년…茶山의 향기]<4>우리 경제의 길을 말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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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상 4차 성장기… ‘1인 창조기업’으로 동력 키워야

농업 국가인 조선에서 행상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8세기 들어 상업의 규모가 커졌고 상인 조직은 체계화됐다. 당시 조선 사회의 새로운 부를 창출한 건 상인이었고, 그 기반엔 분업이 있었다. 김홍도의 ‘길 떠나는 상단’(왼쪽)과 ‘부부 행상’. 푸른역사 제공
농업 국가인 조선에서 행상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8세기 들어 상업의 규모가 커졌고 상인 조직은 체계화됐다. 당시 조선 사회의 새로운 부를 창출한 건 상인이었고, 그 기반엔 분업이 있었다. 김홍도의 ‘길 떠나는 상단’(왼쪽)과 ‘부부 행상’. 푸른역사 제공
《 “물질 자본이 아닌 창안적인 인간 자본을 키워라!”

지난 1000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 민족의 경제 성장은 항상 전쟁 이후 평화기에 경제 대국과 적극적인 교역을 하며 이뤄졌다. 1차 성장은 11∼13세기 송나라의 경제 발전과 함께했고, 2차 성장은 15세기 명나라와 일본의 중계 무역을 주도하면서 이뤄졌으며, 3차 성장은 17∼18세기 청과 교역하며 진행됐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지금은 제4차 성장 국면에 해당한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은 3차 성장기에서 침체기로 접어든 시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어떻게 하면 지금을 4차 성장기의 끝이 아닌 시작으로 만들 수 있을까. 조선 중후기 경제를 전공했고 국제 학술지 ‘경제사 저널(Journal of Economic History)’에 논문 ‘애덤 스미스(1723∼1790)의 관점에서 바라본 17∼19세기 한국 경제의 흥망’을 발표한 전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한국경제사)가 다산의 경제 혁신 사상에서 그 답을 찾았다. 》
6개월 만에 2,000 선을 회복한 2월 8일 코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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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걸 하게 하라

맹자는 실천을 중시한 유학자다. 다산의 ‘맹자요의(孟子要義·다산이 ‘맹자’의 핵심을 정리한 책)’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세적 관념의 성리학(性理學)에서 벗어나 근대적 심성의 성기호설(性嗜好說)로 전환할 것을 설파한다. 다산은 성(性)을 리(理)에 가두는 기존의 성리학 체계로는 자유를 추구하는 경제학 주체의 심성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봤다. 성기호설은 인간이 기호, 즉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태어나 이를 추구한다는 뜻. 개개인이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1세기 한국 경제에 필요한 인재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창안하는 사람이다. 창안은 인간이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마음껏 나타날 수 있다.

[채널A 영상]정약용 탄생 250주년, 21세기 다산 연구의 필요성은?

○ 인간 중심의 창조적 사회 분업


‘목민심서’의 ‘권농조’는 농업을 일반농, 과수농, 삼포농, 방직농, 산림식재농, 목축농 등으로 세세히 분류했다. 다산은 이렇게 분업을 하면 사람들이 서로 필요한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시장에서 만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잉여를 함께 누릴 수 있다고 봤다. 이런 분업과 특화의 기반에는 기술 개발이 있었다. 다산은 ‘기예론(技藝論)’을 통해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8세기 조선은 분업과 완전경쟁시장을 통한 거래가 활발히 나타났다. 이를 통해 물건 값이 내려가면서 백성들은 예전에 비해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세기 조선의 시장은 이 같은 기능을 상실하고 소수 권력자가 다수를 약탈하는 공간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다산의 사민(四民·‘사농공상’을 뜻함)분업론과 기예론은 애덤 스미스의 사회적 분업론(분업하면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생산성이 증가함으로써 시장 참여자가 늘어난다는 이론)과 그 논리적 맥이 닿아 있다. 이들의 이론은 영화 ‘모던타임즈’와 같은 물질적, 기술적 의미의 분업이 아니라 각기 다른 창의성을 가진 인간 하나하나를 대상으로 한 사회적, 인간적 의미에서의 분업이다.

21세기형 직업으로 각광받는 1인 창조기업이 바로 18세기 다산이 지향한 바라 할 수 있다. 실제로 18세기 가내 수공업은 품질과 색, 디자인 등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처럼 1인 창조기업 역시 문화와 정보기술(IT), 전통식품, 공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 아이디어와 전문 지식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즉, 우리 사회가 20세기 물질 자본의 시대에서 21세기 인간 자본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 교역은 천하의 통의(通義)

“우리나라는 남북이 아주 멀고 산택(山澤)이 얽히어 토질이 각각 다르므로 팔도에서 함께 풍년이 드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건륭 경술년(1790년) 이후 지금(1821년)까지 한 번도 없었다.”(‘경세유표’)

다산은 30년 동안 조선의 기후 변화와 토질, 작황 등을 관찰한 후 “남북 지역 간 교역이 반드시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가뭄이 들면 가뭄에 강한 북측 곡식이 남으로 내려오고, 홍수가 들면 홍수에 강한 남측 곡식이 북으로 이동해야 더 많은 백성을 배부르게 먹일 수 있고 조선 전체의 물가도 안정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조선 조정은 전국에서 수확된 곡식 800만∼1000만 석을 관리할 정도로 ‘부유’했다. 영조 때 설립된 교제곡(交濟穀)은 북의 원산창과 남의 포항창 곡식이 서로 교역하는 것을 돕는 역할을 했다.

필자는 1990년대 이후 북한 식량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공산주의 체제가 아닌 남북 분단에 있다고 본다. 1990년대 홍수가 빈발하면서 북한에 식량위기가 왔지만 남한에선 풍년이 계속됐다. 반면 가뭄이 심할 때는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따라서 현재 북한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원조가 됐든, 교역이 됐든 간에 한국의 곡식을 북으로 보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곡물가 안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또 북한과 반드시 교역해야 한다. 이는 북한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또 다산은 남북 간 교역뿐 아니라 국가 간 무역을 강조했다. 실학자 박제가는 ‘북학의’를 통해 “나라와 나라 사이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교역하는 건 천하의 통의(세상에서 널리 통하는 정의와 도리)”라 했고, 다산은 이런 북학파를 예찬하며 “중국과의 기술 교역을 확대하기 위해 이용감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무역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최근 찬반 논쟁이 뜨거운 자유무역협정(FTA)도 우리나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 자본주의 체제 유지하려면 정직해야

전성호 교수
전성호 교수
다산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통해 정직을 수없이 강조했다. 정직은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윤리 경영의 핵심 요소다. 특히 타인의 자본으로 운영되는 주식회사는 정직하고 깨끗해야 한다. 요즘처럼 인적 자본이 중요시되는 사회에서는 회사뿐 아니라 개인도 정직해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처럼 정직성은 어려서부터 철저히 교육해야 가능하다. 그래야만 한국의 인적 자본이 세계 시장에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다.

다산은 성기호설을 주장했지만 무작정 좋아하는 것만 하라고 말한 건 아니다. 욕(欲)과 낙(樂), 성(性)의 조화 및 공동체와의 공감도 강조했다. 이는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강조한 이기심과 공감의 균형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는 공감과 이기심의 균형이 무너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다산의 경제 사상은 사회 정의를 위한 대안도 될 수 있다.

전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mingoo@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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