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제프 사토’의 레코드 가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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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벡의 솔로 앨범 ‘Truth’ 표지.
제프 벡의 솔로 앨범 ‘Truth’ 표지.
2018년 11월 20일 화요일 맑음. 제프를 위하여.

#298 Jeff Beck ‘Beck‘s Bolero’(1966년)
 
얼마 전 방문한 일본에서 엑스저팬의 콘서트를 놓친 것은 땅을 칠 낭패였다. 갑자기 상륙한 태풍 탓이다. 당일 도쿄 인근 지바까지 달려갔음에도 현장에서 공연 취소 소식을 접했다. 도쿄에 거주하는 친한 동생 J와 하릴없이 도쿄로 돌아왔다. 흩날리는 빗방울에 맞춰 스웨덴 밴드 카이파의 몽환적인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했는데, 뒷맛은 씁쓸했다.

음반점이나 가자는 데 의기투합. 시내 시모키타자와 지역에 차를 세워두고 골목 투어를 시작했다. 태풍 전야의 시모키타자와는 그런대로 그만의 운치를 뿜었다. 우연히 들어간 작은 건물 2층에서 뜻밖의 음반점을 만난 것은 벼락같은 행운이었다.

동생 방만 한 작은 공간의 주인장 이름부터 범상치 않았다. ‘제프 사토.’ 어쩐지 음반점 안에 영국 기타리스트 제프 벡의 음반이 가득하다. 정규앨범은 물론이고 처음 보는 희귀한 LP레코드와 카세트테이프까지, 마치 제프 벡의 집에라도 온 듯했다. 에릭 클랩턴의 갖가지 앨범이 많은 것도 눈에 띄었다. ‘Tears in Heaven’ ‘Change the World’ 같은 곡의 카세트테이프 싱글 버전까지 갖췄으니….

일본어를 잘하는 J가 주인장과 말을 텄다. 사토 씨는 자기 이야기를 털어놨다. 워너뮤직과 유니버설뮤직 일본 지사에서 수십 년간 근무한 그가 정년퇴임하고 올해 소일거리 삼아 차린 가게가 바로 이곳, 레코드점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작년에 죽마고우가 별세했어요. 제프 벡을 유달리 좋아한 친구인데, 그가 남긴 관련 음반들을 가게로 가져왔어요. 그 친구의 유지였으니까요.”

여전히 어깨까지 오는 긴 파마머리의 사토 씨는 언뜻 봐도 노장 밴드의 기타리스트 같았다. 그가 뜻밖에 진짜 자기 앨범을 건넨다. 음악가 제프 사토의 기타 연주 앨범이다. 엑스저팬의 요절한 멤버 히데가 솔로 앨범을 낼 때 제작에 참여하고, 벡이나 클랩턴 같은 거장들이 일본에 올 때마다 일을 맡아 했다는 그의 후일담은 그치지 않았다.

귀국한 뒤 어느 밤, 제프 사토의 앨범을 CD플레이어에 넣었다. 시모키타자와의 태풍 전야가 마치 ‘환상특급’의 에피소드처럼 뿌연 창문으로 멀게 다가왔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일본#제프 벡#beck‘s bol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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