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당신 없는 자유란… 눈물로 부른 이별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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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택배 포장을 뜯다 문구용 칼에 왼손 엄지를 살짝 베었다.

그 짧고 날카로운 고통의 순간에 지성적 말씀이나 영혼의 은유는 소용없었다. 평소엔 인지도 못한 살갗의 얕은 깊이, 동물로서 인간의 허약함을 느끼며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수밖에는….

밴드를 붙인 손으로 문득 기타가 치고 싶어졌다. 마침 생각난 곡이 아일랜드 가수 시네이드 오코너의 ‘Nothing Compares 2 U’. 대강 내 목청에 맞춰 C장조로 연주를 시작했다. G/B, Am, 그리고 E, B♭, F 등을 오가는 코드 진행을 하는 동안 묘하게도 왼손 엄지는 할 일이 없었다.

노래의 주제는 제목에 다 쓰여 있다. 주인공은 이별 이후 삶이 얼마나 자유로워졌는지에 대해 먼저 말한다. 매일 밤 외출하고 낮에는 잠만 잔다고.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으며 누구든 만날 수 있다고. 어떤 남자에게든 팔을 두를 수 있다고. 하지만, 말한다. 당신을 대신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고.

때론 체념한 듯, 때론 화가 난 듯, 때론 우는 듯 부르는 오코너의 절창은 노래를 한 편의 격정적 모노드라마로 만든다. 뮤직비디오의 정서적 진폭도 크다. 카메라는 시종 노래하는 오코너의 얼굴을 화면 가득 담는다. 비구니처럼 깎은 머리 아래 새하얀 피부의 오코너. 노래가 후반부로 향하자 커다란 눈망울에서 실제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코너의 곡은 F장조다. ‘파’보다 장3도 위 음정의 ‘라’로 불러야 할 음을 오코너는 이따금 반음 내려 부른다. 음악 용어로 블루노트(blue note)다. ‘라♭’에서 ‘솔’로 떨어지는 부분, 이 반음의 차이는 작지 않다. ‘night’ ‘lonely’ ‘tears’ ‘falling’과 후렴구를 맺는 ‘to you’ 부분에서 나오는 이 반음 차이가 슬픔의 깊이를 되레 배증한다.

작사·작곡자는 ‘Purple Rain’으로 유명한 프린스(1958∼2016)다. 그의 2주기를 맞아 4월, 음반사는 1984년에 녹음된 프린스의 원곡 버전을 최초로 세상에 공개했다. 오코너의 음성으로 발표되기 6년 전에 녹음된 원곡은 거친 전기기타, 열정적인 색소폰 솔로 연주가 이채롭지만 오코너의 버전이 지닌 아우라에 도달하지 못한다.

멀쩡한 네 개의 손가락을 기타 지판 위로 움직이며 블루노트를 부르고 또 불러봤다. 언뜻 보이는 왼손 엄지에 이내 무심해졌다.

아무것도, 그 누구도 상처 입지 않는 이별을 생각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시네이드 오코너#nothing compares 2 u#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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