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내 평생 ‘더럽게’ 멋있었던 공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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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7일 화요일 흐림. 더럽게 멋있는. #238 Lady Gaga ‘Million Reasons’(2016년)

평생 본 것 중 가장 ‘더럽게’ 멋있는 공연이 있다.

때는 2014년 3월 13일 밤(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시내 바비큐 식당 뒤뜰에서 열린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더러운 콘서트. 세계 최대의 음악 마켓 겸 페스티벌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에 기조연설자로 참가한 가가가 연 깜짝 공연. 그는 텍사스식 통돼지 바비큐처럼 봉에 포박돼 거꾸로 매달려 등장했다. 중반부엔 로데오 기계에 올라 건반을 치며 노래하는 가가의 몸 위로 동료 예술가가 구토를 반복하는 퍼포먼스도 펼쳤다. 이 파격적 특별무대의 내용은 즉각 뜨거운 논란과 화제를 지폈다. 다음 날 가가는 쓰레기봉투를 기워 만든 드레스를 입고 호텔 콘퍼런스 룸에 유유히 등장했다.

‘이 무대가 죽기 전 마지막’이라는 식의 필사적이며 정교한 가창과 퍼포먼스가 한 마리 맹수의 잔인하고 우아한 사냥 장면 같았다. ‘미국서 보고 온 가가 공연 어땠어?’ 선배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정말이지… 더럽게 멋있던데요.”

5일 밤 텍사스 주 휴스턴의 NRG 스타디움에서 열린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은 또 한 번 더럽게 멋졌다. 이번엔 구토 예술은 없었다.

가가는 공중곡예와 격렬한 안무를 버무려 무대 상하좌우를 종횡으로 뛰고 날았다. 연달아 네 개의 댄스곡을 부른 가가가 숨 돌릴 틈 없이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한 발라드 ‘Million Reasons’가 하이라이트. 호흡이 턱까지 찬 상황에서 그는 유작에 마지막 먹이라도 쏟아붓듯 토로했다. ‘떠나야 하는 이유가 1억 개나 있지만, 그대여, 머물러야 할 이유 한 가지면 돼.’

가가는 공연에 정치적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지붕 위에서 부른 50초짜리 정체불명의 서곡에 있지 않았을까.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세 개의 곡을 짜깁기한 노래. 애국의 노래 ‘아메리카에 은총을’과 ‘충성의 맹세’의 사이에 그는 저항 포크 가수인 우디 거스리(1912∼1967)의 ‘This Land Is Your Land’를 자연스레 이어 붙였다.

매카시즘의 감시하에서 거스리는 원래 있던 다음의 가사를 음반 녹음 때만은 빼야 했다고 한다. 가가 역시 굳이 이 대목을 부르지는 않았다.

‘크고 높은 벽이 날 막으려 했다네/이렇게 쓰여 있었지. ‘사유재산임’/하지만 뒷면엔 아무 말 없었네/이 땅은 당신과 날 위해 만들어졌다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레이디 가가#million reasons#사우스바이사우스#슈퍼볼 하프타임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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