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길을 떠난 그날… 안개에 둘러싸인 뉴욕이 말을 걸어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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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2017년 1월 9일 월요일 맑음. 혼자서 여행. #235 Passenger ‘Travelling Alone’(2015년)

7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무대에서 노래하는 영국 가수 패신저. A.I.M 제공
7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무대에서 노래하는 영국 가수 패신저. A.I.M 제공
 여행이란 무엇인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몽골에서 5년의 사춘기를 보낸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에게는 가끔 한국에 오는 일이 여행과 같았다고 했다.

 영국인 마이클 로젠버그는 16세에 학교를 관두고 거리의 악사로 나섰다. 유럽과 호주의 골목골목을 떠돌며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불렀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있었던 일이다. 거리 공연을 막는 경찰의 눈을 피해 자리 잡은 한적한 뒷골목엔 행인마저 없었다. 70대 후반의 노인 한 명만이 지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노래가 끝나자 노인은 자기 이야기를 들려줬다. 고국인 호주의 바깥에는 한 번도 나가 본 적 없는 노인과 그의 아내는 일생일대의 여행을 위해 없는 형편에 몇 년간 조금씩 돈을 모았고 마침내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그러나 아내는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 여행을 앞두고 별세했다. 노인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혼자서 코펜하겐으로 날아왔다. 혼자이지만 그래서 혼자가 아니라고 했다. 로젠버그는 노인의 얘기에 감동해 노래를 만들었다.

 반쯤 짓다 만 그 노래를 로젠버그는 몇 달 후 스위스의 거리에서 불렀다. 이번엔 지나던 젊은 여인 하나가 그의 노래에 발길을 멈췄다. 여인의 눈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10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이별한 여인은 그와 약속한 평생의 계획 이야기를 들려줬다.

 7일 밤 서울 용산구에서 싱어송라이터 패신저의 첫 내한공연을 봤다. 승객을 뜻하는 패신저는 로젠버그의 예명이다. 그는 “서로 만난 적 없는 그 코펜하겐의 노인과 스위스 여인 이야기를 한 노래의 1, 2절에 엮었다”며 ‘Travelling Alone’이란 곡을 들려줬다.

 ‘난 한 번도 침묵이 내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지/지난밤이 되기 전까지, 오늘이 되기 전까지’

 패신저는 2012년 발표한 ‘Let Her Go’가 유튜브에서 12억70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어제의 거리 악사에서 오늘의 스타로 떠올랐다. 통기타 한 대와 허스키한 목소리로 완벽한 무대를 선사한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그 유튜브 히트송이 아니었다.

 ‘Travelling Alone’이 끝나자 그는 말없이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를 이어 불렀다.

 그의 노래에 문득 2014년 10월의 추위와 안개에 둘러싸인 뉴욕, 2013년 11월의 비에 젖은 교토 밤거리가 떠올랐다. 그날 난 혼자였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여행#마이클 로젠버그#악동뮤지션#passenger#travelling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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