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떠난 여인 발길 돌려세운 그때 그 음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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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9일 화요일 맑음. 음악메일. #231 Macy Gray ‘I Try’(2016년)

미국 솔 싱어송라이터 메이시 그레이의 신작 ‘Stripped’ 표지. 씨앤엘뮤직 제공
미국 솔 싱어송라이터 메이시 그레이의 신작 ‘Stripped’ 표지. 씨앤엘뮤직 제공
 서기 2002년.

 돌아선 연인의 마음을 편지 한 통, 노래 한 곡으로 돌릴 수 있는 특급 서비스가 있었다. B 음원 사이트의 ‘음악메일’ 서비스. 인공지능 아닌 인간 지능을 이용하는 번거로움이 따르지만, 심정을 대변할 노래 한 곡과 배경화면을 고른 뒤 열심히 편지를 써서 수신인 e메일 주소로 보내기만 하면 됐다. 받은 이는 내가 고른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그 글을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나도 이 신묘한 기능을 제대로 써먹은 적 있다. 별안간 이별 통보를 받은 뒤 처연함의 바닥을 쓸고 다니다 문득 우울한 음악이나 듣자 하고 들어간 그 사이트에서 그 서비스가 눈에 띈 것이다. 나의 끝없는 선곡 본능이 깨어난 게 바로 그날이었나 보다.

 메이시 그레이의 ‘I Try’. 딱 한 번 들어도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 성대에 모래알 한 줌 넣은 듯 서걱대는 그레이 특유의 목소리는 1999년 발표한 이 데뷔 곡에서부터 빛을 발한다. 거칠고 어눌한 그 음성이 지닌 마력을 설명할 길을 아직도 못 찾겠다. 세상의 모든 이상한 아름다움이란 신비롭다.

  ‘잘 가, 라고 하려는데 목이 메어/뒤돌아 가려는데 자꾸 헛디뎌/숨기려 해도 너무 분명해/나의 세상은 바스러져, 네가 없다면.’

 가사는 주문처럼 그녀를 내게 돌려놓았다. 편지에 뭐라고 썼는지는 한 글자도 기억 안 난다. 여하튼 그녀도 나도 울었다. 아주 먼 옛날이야기다.

 그레이가 얼마 전 놀라운 신작 ‘Stripped’를 음반사 ‘체스키 레코드’에서 냈다. 아리 호니그(드럼), 러셀 멀론(기타) 같은 베테랑 재즈 연주자들과 함께했다. ‘I Try’ 역시 기타 재즈 트리오가 받치는 형태로 리메이크했다. 트럼펫 솔로가 가세한 메탈리카의 ‘Nothing Else Matters’ 재해석도 신선하다.

 악기 편성이 단출한 만큼 체스키 레코드 특유의 공간감이 더 산다. 듣는 이가 녹음스튜디오에 앉아있다 상정하고 특수 장비와 기술로 완성한 입체녹음. 깃털 구름 같은 악기 소리 사이로 행간처럼 투명한 가상공간을 올려다본다.

 하늘빛 하나로 족한 날이 있다. 하늘색 하늘이 아인슈타인의 시공간을 구겨버린 날. 그 파란 융단 아래 어딘가, 오래전 그날의 내가 나처럼 살고 있을 것 같은 그런 날.

 오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macy gray#i try#strip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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