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환멸의 시대… 다 잘될 거라고 해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2016년 11월 22일 화요일 맑음. 마취제.
#230 Green Day ‘GiveMe Novacaine’(2004년)

최근 신작 ‘Revolution Radio’를 낸 미국 록 밴드 그린 데이. 왼쪽부터 마이크 던트, 빌리 조 암스트롱,트레 쿨.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최근 신작 ‘Revolution Radio’를 낸 미국 록 밴드 그린 데이. 왼쪽부터 마이크 던트, 빌리 조 암스트롱,트레 쿨.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해질 대로 해져서 그만 소심함과 무기력의 스프링이 제멋대로 비어져 나온 싸구려 가짜 가죽 소파. 따지고 보면 그게 내 20대였다.

 달팽이처럼 몸을 묻고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러운 강물처럼 저절로 흘러가던 시간. 위대한 부유의 나날. 미국 펑크 록 밴드 그린 데이는 그 무렵 내 심방과 심실을 기타 헤드로 찢어발기며 침공했다.

 기본 코드를 잡고 긁어대는 지저분하고 시원한 기타 소리, 사탕처럼 예쁜 멜로디, 그 위에 걸터앉은 무기력한 가사.

  ‘시간 있으면 나 징징대는 것 좀 들어줄래?’(‘Basket Case’ 중)

 1994년 앨범 ‘Dookie’에서 스스로를 가리켜 TV 채널이나 돌리는 한심한 무직자라며 투덜대던 변두리 청년은 2004년 앨범 ‘American Idiot’에 닿자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에 미혹된 바보.

 뮤지컬로도 제작된 ‘American Idiot’의 문을 보컬 빌리 조 암스트롱은 이런 선언으로 열어젖힌다. ‘미국 바보는 되지 않을래!’ 9·11테러(2001년) 이후 부시 행정부의 무능과 위선, 미디어에 길들여진 대중을 ‘아메리칸 아이돌’(2002년 시작한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빗대 ‘아메리칸 이디엇(미국 바보)’으로 비튼 거다. 변두리 청년은 이제 2000년대 초 어수선한 미국 사회를 거닐며 환멸과 자각의 처참한 다이어리를 써 내려간다.

 그린 데이는 이달 초 MTV EMA 시상식에서 ‘American Idiot’을 부르다 개사해 도널드 트럼프를 비난했다. ‘은근히 세뇌하는 트럼프 아메리카!’ 20일(현지 시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는 신곡 ‘Bang Bang’ 중간에 이렇게 외쳤다. ‘노(no) 트럼프, 노 KKK, 노 파시스트 USA!’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에서 등장인물 터니는 애국심을 자극하는 TV 광고에 혹해 입대했다 전장에서 크게 부상을 당한다. 설탕과 장미로 된 가시면류관 같은 노래, ‘Give Me Novacaine’이 흐른다. 모래성을 간질이듯 부드럽게 넘실대는 슬라이드 기타가 돌연 거친 노도로 뒤틀려 포효하자 막사에서 다리 절단 수술을 받던 토니 역시 발작하고 만다.

  ‘다 잘될 거라고 해줘/아무 느낌 없을 거라고/노버케인(마취제)을 내게 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그린데이#revolution radio#basket case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